미국 대통령 가운데 최악의 골퍼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라고들 한다. 클린턴은 재임 시절 400여 회나 라운딩을 했던 골프광이었지만 실력은 형편없었다. 기자들이 물으면 멀리건을 남발하고 OK(컨시드)를 넉넉히 받아낸 이야기는 빼고 스코어카드에 적힌 숫자만 말했다. 한 홀에서 두 번 이상 멀리건을 남발할 때가 많아 별명이 ‘빌리건’이었을 정도. 클린턴에게 적대적인 일부 언론은 기본적인 골프 룰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국정을 맡길 수 있겠느냐고 들이댔다.
▷클린턴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유력 대선 후보의 골프 매너에 비하면 점잖은 편에 속할 것 같다. 복싱선수인 오스카 데라 호야는 2년 전 로스앤젤레스 부근 트럼프내셔널골프장에서 우연히 트럼프와 골프를 친 경험을 공개했다. 가장 먼저 티박스에 오른 트럼프는 처음 티샷한 공이 물에 빠지자 동반자의 허락도 없이 연달아 4개의 공을 쳐댔다. 모든 공이 해저드로, 덤불로 들어가자 트럼프는 페어웨이 한복판에 공을 슬쩍 떨어뜨린 뒤 “처음 친 공이 여기 와 있네”라며 속칭 ‘알까기’를 했다.
▷역사상 최저 타수를 기록한 골퍼는 북한의 김정일이다. 1994년 평양골프장에서 11개의 홀인원을 포함해 38언더파 34타를 쳤다고 북측이 발표한 바 있다. 물론 아무도 확인한 바 없다. 짐작건대 김정일이 티샷을 하면 측근들이 공을 홀 주변에 갖다 놓았을 것이다. 트럼프의 골프 스코어도 몰상식과 거짓으로 만들어낸 타수라는 점에서 김정일과 막상막하다.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보려면 골프만 한 게 없다. 18홀에 인간의 희로애락이 다 드러난다. 성격이 급한가, 승부에 집착하는가, 동반자를 배려하는가. 영국에서는 사윗감이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아버지가 딸의 남자친구와 라운딩하는 일이 흔하다. 골프 실력과 대통령의 자질은 상관이 없지만 골프 매너와 대통령 자질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육체적 기량에 못지않게 정신의 수련이 필요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가능성이 크지 않다지만 트럼프가 대통령 돼서 막장 골프 치듯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