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9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세계 비핵화선언’ 발언 등에 대해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앞으로는 북한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우 원내대표는 9일 국회에서 열린 첫 원내대표단회의에서 “핵무기로 체제를 지킬 수 있다는 발상은 적절치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우 원내대표가 당내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의 리더 격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86그룹’ 상당수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에서 활동한 이른바 ‘운동권’ 출신이다. ‘NL(민족민주)’ 계열인 전대협은 남북문제에 있어 상대적으로 북한에 우호적인 자세를 견지해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까지도 북한에 대한 ‘제재’보다는 ‘대화와 소통’을 강조해 왔다. 북한의 핵 실험, 미사일 발사 등이 터졌을 때 보수 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극적 태도를 취해 종종 ‘친북·종북 프레임’에 휘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우 원내대표의 발언은 그동안의 태도와 사뭇 달랐다. 86그룹의 ‘대북관’이 바뀐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는 “(북한이) 핵무장을 계속하면서 비핵화를 추진하겠다는 이중적 태도는 용납될 수 없는 말”이라며 “이것은 한반도 평화를 해치는 노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인권침해나 한반도 평화를 저해하는 정책은 과감하게 비판하겠다”고 강조했다.
86그룹이 당의 전면에 나선 만큼 과거와 달리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지도 담겨있다. 박완주 원내수석부대표는 통화에서 “86그룹을 더 이상 ‘운동권’이 아닌 ‘세대’로 봐야한다”며 “20년 이상 제도권 정치 안에서 활동하며 국가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만큼 계속해서 과거의 잣대로만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86그룹의 변화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체제가 추진하는 경제, 안보 문제 등에 대한 중도화 전략에 발맞추고, 정치적 외연의 확장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해석된다. 다만 김 대표와 온도차가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개성공단 폐쇄 문제 등에 대해 우 원내대표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대표가) 대화채널을 함께 강조해줬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6자회담 등 외교적 채널도 병행해서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기 대변인은 “북한에 대해 비판할 것은 단호하게 비판하겠지만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문제 등은 현실적인 남북의 평화와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는 부분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물꼬를 트는 것을 막아선 안 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경제와 외교 안보 분야에 있어선 안정감 있는 정책을 추진하겠지만 당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훼손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당내 비주류 한 의원은 “86그룹이 세대교체의 의미 속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긍정적”이라며 “다만 변화의 시도가 정략적 측면에 따른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