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의 ‘양아버지’를 자처했던 토미 라소다 전 LA 다저스 감독(현 고문)은 “홈런왕은 인구 100만 명 중에서 한 명 정도만 나온다”며 그 희소가치를 강조했다. 국내 야구인들도 리그를 주름잡는 홈런왕은 10년에 한 명꼴로 태어난다고 말한다. 1980년대 이만수, 1990년대 장종훈, 2000년대 이승엽, 2010년대 박병호. 대표적인 홈런타자를 떠올리면 10년 주기설이 얼추 들어맞는다.
그런 점에서 2005년은 축복이었다. 대형 홈런타자가 한 해 2명이나 배출된 것이다. 박병호(성남고)와 정의윤(부산고)은 초고교급 쌍두마차였다. 박병호는 고교시절 4연타석 홈런으로 유명했고, 정의윤은 이미 중학교 때 사직구장 담장을 넘겼을 만큼 싹이 남달랐다. 당시 한 스카우트는 “힘이나 기량이 거의 비슷한 타고난 거포들이었다”고 밝혔다.
둘의 인생도 ‘판박이’처럼 닮아갔다. 거포에 목마른 LG에 나란히 입단해 큰 기대를 받았지만, 현실은 너무 달랐다. 공갈포와 똑딱이 타자로 전락했다. 홈런 부담감에 짓눌려 수년 동안 스윙이 움츠러들었던 것이다. LG에서는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했다.
정의윤의 성장 속도는 박병호와 비슷하다고 한다. 둘의 ‘평행이론’이 무대를 미국으로 확대될지도 관심이다. 박병호의 힘에 놀란 메이저리그가 정의윤도 주시하기 시작했다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는 “정의윤을 레이더망에 넣었다”면서 “만약 정의윤이 박병호처럼 홈런왕에 오르면 영입을 고려하는 팀들이 생길 것 같다”고 밝혔다.
물론 만개한 박병호와 달리 정의윤은 아직 갖춰야 할 게 더 많다. 힘과 스윙 스피드 등 기본 조건은 엇비슷하지만, 홈런을 치는 데 필요한 세밀한 기술은 가다듬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홈런은 힘과 기술의 완벽한 조화에서 나온다. 박 전 감독은 “스윙이 더 부드러워야 하고, 스윙 궤적도 짧게 줄여야 한다”면서도 “정의윤은 박병호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평했다.
메이저리그에선 ‘홈런왕은 캐딜락을 몰고, 타격왕은 포드를 탄다’고 말한다. 그만큼 홈런타자에 대한 수요가 남다르다. 또 박병호의 홈런이 한국산 거포의 위력을 증명했다. 정의윤은 내년 시즌을 잘 마치면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을 얻는다. 서른 초반의 나이가 문제지만, 2년 정도의 계약은 가능할 것이라는 게 스카우트들의 예측이다. 친구 따라 강남(미국)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박병호와 정의윤의 평행이론이 갈수록 흥미를 더해갈 것으로 전망된다.
윤승옥기자 tou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