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에 멍드는 대한민국]<上> 악플삭제 대행업체서 본 실태
○ 희생양 소환해 ‘악플 잔치’ 벌이는 악플러
연예인 악플 300만 건… 아직 못 지운 9900건 4 일 본보 박훈상 기자가 서울 강남의 온라인 기록 삭제 업체 산타크루즈컴퍼니를 찾아 유명 연예인 A 씨가 의뢰한 악플 의심 글 개수인 ‘9900’을 가리키고 있다. 업체에 따르면 처음 A 씨가 악플 피해를 당해 업체를 찾아왔을 때 300만 건 이상 악플이 달렸고 지우고 지워도 아직 9900건이 남았다고 한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악플을 찾으면 포털사이트에 게시 중단을 요청한다. 게시 중단 요청 취지와 구체적인 권리침해 표현, 소명 내용 등을 정리하고 A 씨 위임장을 첨부하면 된다.
차라리 험한 욕설은 삭제하기가 쉬웠다. 욕설 대신 교묘하게 치를 떨게 만드는 인신공격성 악플은 대처가 애매하다. ‘연예계는 범죄자가 재취업하는 곳’처럼 A 씨를 범죄자로 몰아가거나, ‘진짜 연예인은 뻔뻔해야 할 수 있다’며 인성을 문제 삼는 글이었다. 악플러가 악플에 A 씨 이름을 교묘히 녹이면 다른 악플러가 재밌다고 박수를 치며 ‘악플 잔치’를 벌였다.
김 팀장은 “욕설이 없는 악플은 삭제하기가 쉽지 않다”며 “게시글을 꼼꼼히 읽어 게시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다음 적확한 정보통신망법 조항을 적용해 삭제 요청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악플 자유에 월 300만 원?
월 300만 원은 일반인으로선 지불하기 힘든 돈이다. 김 대표는 “업체를 찾았다가 돈이 없어서 울고 가는 피해자도 있는데 결국 돈이 없으면 악플 앞에서 더 비참해진다”고 말했다.
일반인 B 씨(여)는 1000만 원이 넘는 거금을 쓰고도 악플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그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말 한마디의 실수로 사이버테러에 시달렸다. 악플러의 마녀사냥은 가혹했다. 얼굴 실명 학교 SNS 등 거의 모든 신상이 털렸다. 이 업체를 찾아 온 B 씨 어머니는 “악플러에 시달리는 딸이 대인기피증과 언어장애에 힘겨워하고 있다. 한마디 실수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딸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며 눈물로 호소했다고 한다.
인터넷에 B 씨 이름을 검색했더니 악플러는 그가 누군가를 만났는지까지 찾아내 악플을 달았다. ‘넌 죽어도 까여야 한다’ ‘조물주의 실패작이다’ ‘시간이 흘러 잊혀지길 바라는 것도 너의 죄’ 등이 달렸다. 6개월 동안의 악플 삭제 관리가 끝나자마자 다시 악플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온·오프라인에서 사실상 24시간 감시당하며 살아가느라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B 씨가 악플에서 벗어나기는 영원히 불가능해 보였다.
○ 알몸에 달린 악플
가족에게 알몸을 보이게 된 C 씨는 부끄러움과 치욕 속에 살다가 사진과 악플 삭제를 업체에 의뢰했다. 업체는 6개월간 국내 커뮤니티와 SNS에 올라간 악플을 삭제했다. 하지만 해외 성인사이트에는 C 씨 사진이 계속 게시되고 있었다.
일반인은 방송 출연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거나 노출이 심한 사진과 동영상이 유출됐을 때 악플러의 먹잇감이 된다. 김 대표는 “방송이나 SNS에서 절대 자기 자랑을 하거나 특정 집단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사진과 동영상도 함부로 찍어 SNS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죽으면 악플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 고통은 망자를 사랑했던 가족과 주변 사람이 고스란히 넘겨받는다. 웬만한 악플에는 눈도 깜짝 않는 베테랑 직원도 연예인 D 씨를 떠올리면 숙연해진다. D 씨가 생전에 찍은 사진이 여전히 SNS에 올라오고 저속한 성적 농담을 담은 악플이 지금도 달린다. ‘부관참시(剖棺斬屍·한 번 죽은 사람을 또 죽이는 것) 악플’이 D 씨의 영혼마저 옭아매고 있었다.
악플 삭제 업체는 피해자의 불행에서 이윤을 올린다. 업계 최초로 꼽히는 산타크루즈컴퍼니를 비롯해 현재 10여 개 업체가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니 세상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늘고 있다”며 “반사회적인 분노를 악플로 타인에게 표출하니 고객은 늘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몰지각한 업체는 악플을 삭제해주겠다며 의뢰인의 개인정보를 넘겨받고서 이를 세상에 알리겠다고 협박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