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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의 문학뜨락]“시가 뭐고, 나는 배추씨만 아는데…” 종이에 꾹꾹 눌러쓴 할매들의 고운 詩

입력 | 2016-05-11 03:00:00


‘인자 허리 아프고/몸이 아프고/몸이 마음대로 안된께/마음이 쎄하다/저 사람은 저렇게 빤듯이/걸어가니 좋겄다/나는 언제 저 사람처럼/잘 걸어 갈끄나.’(‘좋겄다’)

나이 들어 육신이 쇠락하는 것만큼 서글픈 일이 있을까. 젊은이가 반듯하게 허리를 펴고 걸어가는 게 세상 무엇보다 부럽다. ‘쎄하다’는 사투리에 시인의 감정이 오롯하다. ‘좋겄다’의 시인은 전남 곡성군 시골마을에 사는 양양금 할머니. 최근 출간된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에는 양양금 할머니를 비롯한 할머니 9명의 작품 120여 편이 실렸다.

70, 80대 할머니 시인들이 한글을 깨치기 시작한 것은 7년 전. 곡성의 길작은도서관 김선자 관장의 지도로 수업을 받게 됐다. 연필을 처음 잡아 본다는 할머니가 태반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가르치듯 선 긋기, 받아쓰기부터 했다. 글자를 읽고 이해하는 게 수월치 않아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과 동시집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첫눈’에 관한 동시를 읽다가 할머니들 사이에 눈 오던 날 기억과 사연을 떠올리는 수다가 벌어졌다. “시를 쓰고 싶으면 써 보시라고 권했다. 광고 전단, 달력종이 뒤에다 시를 적어 오시더라. 시를 쓰시면서도 ‘이게 시인가’ 하는 눈치였다.”(김 관장) 그런데 그런 시편들이 애틋하다. 시집살이를 겪은 김점순 할머니에겐 눈 오는 것도 ‘시아버지 시어머니 어려와서/사뿐사뿐 걸어오’는 것처럼 보인다.

어렸을 적 가난에 시달린 박점례 할머니에겐 ‘젖 떨어진 동생에게 준/흰 밥이/어찌 맛나 보여 먹고 잡던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요즘 시가 어렵다고 하는데, 자신들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적은 할머니들의 시를 보니 우리가 사는 삶 자체가 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김 관장은 말한다.

시집 ‘시가 뭐고?’의 주인공인 경북 칠곡군 할머니들은 또 어떤가. 고추씨를 사서는 ‘영감하고/자식처넘 키였다’는 장병학 할머니, ‘갈 때대가 곱게 잘/가느 게 꿈’이라는 박금분 할머니의 시 모두 독자들의 가슴에 진솔하게 와 닿는 시편들이다. ‘사랑이라카이/부끄럽따/내 사랑도/모르고 사라따’(박월선 ‘사랑’)는 짠한 사랑시도 있다. 마침 칠곡군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는 ‘시낭독열차’(www.storybiz.co.kr)가 5월 28일을 시작으로 올해 5회 예정돼 있다. 장석주 박연준 시인 부부와 정호승 문정희 문태준 시인이 함께 하는 행사다. 유명한 시인들과 칠곡군 시인 할머니들이 만나 소박하고 아름다운 시심(詩心)을 나눌 모습이 기대된다. ‘논에 들에/할 일도 많은데/공부시간이라고/일도 놓고/헛둥지둥 왔는데/시를 쓰라 하네/시가 뭐고/나는 시금치씨/배추씨만 아는데’(소화자 ‘시가 뭐고’)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