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건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불법행위로 손해가 발생하면 우리나라의 법 제도는 크게 두 가지로 작동하게 됩니다. 하나는 그 불법행위가 범죄에 해당하는 경우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방향(형사소송)과 피해자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방향(민사소송)입니다. 현재 검찰이 관련자들을 소환하고, 압수·수색 등을 통해 범죄에 해당하는지 수사하고 있으며 이는 기소를 통해 형사소송 절차로 진행될 것입니다. 그러나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 별도의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책임 발생 여부와 배상액을 결정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최근 미국에서 발암물질이 함유된 제품을 사용해 난소암에 걸린 여성에게 5500만 달러(약 627억1100만 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있었습니다. 500만 달러는 피해배상 성격, 그 10배인 5000만 달러는 징벌적 손해배상액이었습니다. 이 같은 내용의 배상 판결이 가능한 이유는 미국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란 가해자 또는 가해 기업의 죄질이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이라고 판단될 때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많은 벌금을 부과하는 일종의 처벌적 배상제도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주요 근거는 기업 활동을 저해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소비자를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기업이 소비자의 건강을 담보로 도박을 한다면 이는 철퇴를 가할 일이고, 준법을 기업 활동의 저해로 인식하는 기업의 논리에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기업이 누린 이익에 타격을 가하는 것만큼 실효성 있는 제재는 없을 것입니다. 피해가 발생한 지 5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하에서도 기업이 이렇게 형식적으로 뒤늦게 고개를 숙였을까 의문이 듭니다.
김미란 변호사 법무법인 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