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모님과 학교에서 놀아요
국내 청소년 절반 이상(56.5%)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일주일에 1시간도 되지 않는다. 10대 청소년 3명 중 1명은 스마트폰 중독이다. 2011년 11.4%였던 스마트폰 중독률은 2014년 29.2%로 급증했다.<통계청·여성가족부 ‘2016년 청소년 통계’>
○ 즐겁게 놀다 보니 운동이 절로
‘학교체육시설 개방 지원 사업’ 프로그램에 참가한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3일 서울 종로구 청운초등학교 체육관에서 단체 줄넘기를 하고 있다. 평소에는 배드민턴을 배우는 날이었지만 이날은 어린이날을 앞두고 별도로 만든 프로그램을 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날씨가 나빠 오늘은 참가하는 가족이 별로 없을 것 같네요.”
이 학교에서는 3월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가 주최하고, 시도 및 시군구체육회가 주관하는 ‘학교체육시설 개방 지원 사업’ 프로그램이 실시되고 있다. 이 사업은 학교에서 사용하지 않는 시간(방과 후와 휴일)에 학교 안에 있는 전용체육관과 강당 겸용 체육관을 개방하는 것이다. 시설 이용률과 지역 주민의 생활체육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이 학교는 올해가 처음이다.
월·화요일은 배드민턴, 수·목요일은 농구, 토요일은 피구나 소프트발리 등 스포츠를 집중적으로 진행하지만 이날은 어린이날을 맞아 임시 프로그램이 실시됐다. 간단한 몸 풀기 체조를 시작으로 꼬리잡기, 단체 줄넘기, 피구가 차례로 이어졌다.
“자∼. 입고 있는 조끼를 벗어 바지 뒤쪽에 끼우세요.”
이 매니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조끼는 꼬리로 바뀌었다. 휘슬과 함께 상대 팀의 꼬리(조끼)를 잡기 위해 모두 뛰기 시작했다. 뺏기 위해, 뺏기지 않기 위해 정해진 구역 안을 빠르게 돌아다니니 금세 아이들의 몸에 땀이 뱄다.
“아저씨가 이렇게 하면 뛰기 시작하는 거야.”
이 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과 함께 참가한 김지응 씨(44)가 왼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몇 차례 실패 뒤 카운트가 시작됐다. “하나∼ 둘∼ 셋∼” 줄넘기 횟수를 외치는 소리가 체육관에 울려 퍼졌다. 열 번을 넘겼을까. 김 씨의 ‘파란 조끼 팀’이 줄에 걸리자 ‘주황 조끼 팀’이 발을 구르며 함성을 질렀다. “오 예∼.”
스스로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같은 색을 입었다는 것만으로 이들은 어느새 한 팀이 됐다.
○ 전국 초중고교 203곳 선정·지원
참가자들이 파란 조끼와 주황 조끼로 팀을 나눠 피구를 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지난해까지 특정 종목 동호인들에게 체육관을 개방했던 이 학교가 ‘학교체육시설 개방 지원 사업’을 신청한 데는 육 사무국장의 역할이 컸다. 그는 “종로구 내 여러 학교를 돌아다녀 봤지만 대부분 체육시설 개방에 난색을 표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학생들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이라는 사업계획서를 이 학교에 제출했는데 받아들여졌다. 교장선생님이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셨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는 이 사업을 운영하는 학교에 전담 매니저의 인건비와 용품 등을 지원한다. 시설 이용 중 발생하는 사고에 대비해 가입한 책임보험 비용도 포함돼 있다. 매니저는 모두 생활체육 관련 자격증을 딴 전문가다. 이성경 매니저는 “6년째 생활체육을 지도하고 있는데 가족을 가르치는 것은 처음이다. 어색했지만 지금은 재미있다. 가족들이 함께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너무 뿌듯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학교 시설을 이용하지만 ‘공짜’는 아니다. 이 학교 학생이 포함돼 있으면 2인 기준 월 3만 원, 다른 학교 학생이 포함되면 월 4만 원, 성인 2명만 등록하려면 월 5만 원이다. 지원금만으로는 사실상 운영이 빠듯해 최소한의 회비는 필요하다는 게 주관단체인 종로구생활체육회의 설명이다. 회비에 차등을 둔 것은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모임을 장려하기 위해서다. 등록을 하지 않은 주민도 개방 시간 동안 시설 이용은 가능하다.
○ 나 홀로 스마트폰 대신 가족과 스킨십
단체 줄넘기가 끝난 뒤 피구가 이어졌다. 아이도 어른도 경기에 열중하는 사이 40대 남성 한 명이 체육관으로 들어오더니 한쪽에서 농구를 하기 시작했다. 열띤 분위기 속에서 피구까지 끝났고 이제는 마무리 체조 시간. 매니저가 서로 등을 맞댄 채 업어주며 몸을 풀라고 하자 무리 속의 한 아이가 “아빠∼” 하며 그를 향해 뛰어갔다. 회사 일로 늦게 온 아버지는 아들이 끝날 때까지 혼자 운동을 했고, 이를 본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등을 맞댄 채 이날 일과를 마쳤다. 인근 신교동에 사는 회사원이라고 밝힌 이 아버지는 “지난달에 아들이 알려줘 아내와 함께 등록했는데 집사람은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오지 못했다. 아이와 같이 할 만한 게 마땅치 않았는데 참 좋은 프로그램이다. 우리 아이가 이곳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보면 집에서와는 다르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주일에 2, 3회는 온다. 대화 여부를 떠나 한 시간 이상 아이와 함께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아이가 원하는 한 계속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파란 조끼를 입고 열심히 줄넘기 줄을 돌렸던 김지응 씨는 “헬스클럽에 가려면 돈도 많이 들지만 일단 재미가 없다. 이 프로그램은 다르다. 아이와 함께 뛰어노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여기에 오기 위해 술을 덜 마시게 된 것도 큰 소득”이라며 웃었다. ‘즐겁게 놀았다’는 김 씨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두 시간 남짓 아이들은 부모, 이웃 아저씨와 아주머니, 그리고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신체활동을 즐겼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은 이 시간 동안 아이들은 부모와 정을 쌓았고 건강을 키웠다. 기계 대신 사람과 소통했다. 새로운 가족문화의 가능성이 학교 체육관에서 싹트고 있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공동기획: 동아일보 대한체육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