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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식 전문기자의 필드의 고수]“동반자를 배려해야 진정한 고수”

입력 | 2016-05-11 03:00:00

<5> 이명규 경도산업개발 회장




이명규 회장은 “골프도, 인생도 마음을 비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안영식 전문기자

골프 한 라운드와 고스톱 몇 시간만 쳐보면 상대방을 알 수 있다. ‘가면’을 썼다면 벗겨지기 마련이다. 골프와 고스톱을 합친 내기골프는 전반 9홀이면 사람됨을 알기에 충분하다.

프로골퍼와 달리 주말골퍼에게 골프의 목적은 기분전환과 힐링이다. 그러려면 반드시 필요한 게 있다. 동반자에 대한 배려다. 그게 없는 골프 라운드는 고역이다.

이명규 경도산업개발 회장(61)은 배려의 고수다. 함께 골프를 쳐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의 골프매너를 칭찬한다.

“골프의 원칙은 공이 놓여 있는 그대로 치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이를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 하지만 동반자에게는 관용을 베풀 수 있어야 한다. 동반자를 편안하게 해줘야 그 팀에서 버디도, 이글도 나온다.”

이 회장의 배려는 파격적이기까지 하다. “공 좀 친다고 잘난 체하며 독주하는 것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나머지 3명이 헤맬 경우 비슷하게 스코어를 맞춰 친다. 프로골퍼도 레귤러온 확률이 70% 안팎에 불과하다. 동반자가 눈치 못 채게 타수를 조절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영화 ‘부당거래’에서 들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대사가 기억났지만, 하기야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구력 30년인 이 회장은 홀인원 두 차례 등 골퍼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모두 맛봤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기쁨은 ‘스코어의 노예’에서 해방된 것이 아닐까.

이 회장은 디벨로퍼(Developer)다. 황량한 대지에 꿈을 디자인하는 기획자다. 부동산의 잠재력을 예측해서 개발 방안을 그리고, 그를 통해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일이다. 디벨로퍼는 업계 용어로 보통은 시행사라고 한다. 건설회사는 시공사이고.

이 회장은 이론보다는 감(感)으로 승부해온 디벨로퍼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천 검단 신도시다.

“모두들 쓰레기 매립지라 꺼렸다. 하지만 현장을 답사하니 성공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타고난 건지, 딱 보면 땅이고 사람이고 감이 온다. 우리 회사가 성공리에 아파트를 짓자, 다른 시행사와 시공사들이 달려들었고 검단 신도시가 탄생했다. 그동안 오로지 감으로 시작한 사업의 99%가 성공했다. 소주 병뚜껑 안에 적혀 있는 고유번호를 두 번 연속 알아맞히는 나에게 신기(神氣)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 회장은 골프도 감으로 친다. 남은 거리 파악도, 클럽 선택도 감에 따른다. 그의 특기는 일명 바이트 샷(bite shot)이다. 핀까지 50m 정도 남았을 때 주로 사용하는데, 피니시 없이 웨지로 찍어 치는 샷이다. 방향성이 좋을뿐더러 공을 그린에 바로 세울 수 있어 적극적인 그린 공략이 가능하단다.

감이 좋긴 했지만 그에게도 부침은 있었다. 외환위기, 리먼 브러더스 금융위기, 해외투자 실패 등등. 그렇지만 그때마다 딛고 일어섰다.

“골프와 사업은 참 많이 닮았다. 예상에서 빗나가 위기를 맞게 된다. 하지만 보기 또는 더블보기 위기 때 파 세이브를 하면 희열을 느끼듯이 사업도 마찬가지다. 운칠기삼(運七技三)도 평소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 경우에 해당된다.”

이 회장이 꾸준히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체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따로 시간 내기가 힘들어서 헬스클럽은 못 간다. 하지만 집에서 매일 아침 30분씩 간단한 기구를 이용해 유산소 운동, 근력 운동을 한다. 그다지 비결로 안 들리겠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세상은 백지 한 장 차이다. 하지만 그게 성패를 가른다. 생각하는 게 같아도 그걸 실천했느냐 여부로 결판이 난다.”

이 회장은 통일문화연구원의 경민포럼 회장과 서울시골프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언젠가 남북이 통일되면 평양에서 세계적인 골프대회를 열고 싶단다.

“그렇게 하려면 사업이 잘돼 돈을 많이 벌어놔야 할 텐데….(웃음)”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나보다 먼저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를 몸에 익히고, 실천까지 하려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궁금증은 인터뷰가 끝날 무렵, 집무실을 무심코 둘러보다 풀렸다.

그의 집무실 책상 맞은편 벽에는 붓글씨로 쓴 커다란 한글 액자가 걸려 있었다. ‘함께하면 더 멀리 갈 수 있습니다.’ 배려는 바로 그의 좌우명이었다.
 
안영식 전문기자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