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교장 선생님은 단호했다. 무슨 말을 해도 결론은 “규정대로 하라”였다.
동아일보는 요즘 ‘평생행복 생활체육’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100세 시대를 앞두고 유아부터 어르신까지 운동으로 건강을 다져야 행복할 수 있다는 취지로 기획한 것이다. 통합 대한체육회가 전략 패러다임으로 내세운 ‘생애주기별 체육활동 지원’의 첫 단계가 바로 유아 체육활동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사진기자와 함께 한 공립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찾았다. 유치원 원감에게 설명을 들은 뒤 자리를 옮겨 수업을 지켜보고 있는데 원감이 다시 기자를 찾았다. 정해진 절차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원장 선생님(초등학교 교장)이 취재를 불허한다는 것이었다.
미성년자 얼굴을 신문에 내려면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전에도 갑자기 유치원을 취재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만난 사립 유치원 원장은 “뒷모습만 나오게 하거나 모자이크 처리를 하면 문제가 없다”고 말했었다. 이번에도 그러면 될 줄 알았다. 간신히 교장과 대면했다.
“급하게 일정을 잡다 보니 보호자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 뒷모습만 나오게 찍거나 모자이크 처리를 하겠다.”
“그래도 안 된다. 수업에 참가하는 모든 원생 보호자의 동의를 받은 뒤 촬영해라.”
“그건 그쪽 사정이다. 못하겠으면 다른 곳을 알아보라. 여기는 안 된다. 동의를 받는 것뿐만 아니라 서약서도 써야 하는데 그것도 안 하지 않았느냐.”
“서약서를 써야 하는 것은 몰랐다. 죄송하다.”
“그것 봐라. 잘못을 인정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취재하지 마라. 계속 이러면 아는 기자에게 연락하겠다.”
죄송하다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한 것은 처음이었다. 다른 언론사 기자에게 알리겠다는 ‘협박’을 당한 것도 처음이었다. 벽을 향해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방법은 있었다. 나중에 동의를 구하면 될 일이었다. 허락을 얻지 못한 원생이 나온 사진은 쓰지 않는 것도 방법이었다. 무조건 나가라고 할 사안은 아니었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