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마애삼존불상
가야산 수정봉 처마바위에
천년을 갇혀 살고 있는 마애삼존불
인간세상 희로애락 모두 외면하고
그렇게 웃고만 계시다가,
제화보살
억겁의 돌을 깨고 인간세상 나와서
서산 저잣거리 중생들 만나보니
미타세계 다른 게 아니었구나
산벚꽃 분분하던 어느 봄날
곰곰 생각에 잠긴 미륵보살님은
천지간에 꽃시절 잠깐인데
산문 환히 열어놓고
구름 탁발,
바람 탁발,
먼 서역에서 걸어와
돌 속 고행으로 화엄세계 이룬 이여
미륵보살 제화보살 양 옆에 거느리고
중생제도 뜻하심인가
산동땅 오가던 백제인 고된 뱃길
만리 밖 밝히도록
천년을 둥글고 환하게 웃고 계시는
석가여래님,
빼어난 명품 하나 주고 간
백제인의 지문이었던가
웃고 계시네. 티끌세상의 중생들, 번뇌와 고통 모두 말끔하게 씻어주시고자 함인가. 눈, 코, 입, 귀 담뿍 웃고 계시네. 먼 백제 때 내 고향 당진(唐津)은 당나라를 오가는 나루터였다는데 서역의 부처님 세 분 그때 오시어 이웃 고을 서산시 운산면 가야기슭 큰 바위에 기대어 그저 웃고만 계시네.
지금은 부처님오신날이지만 우리 할머니 초파일에는 수덕사, 마곡사, 개심사 백리 길 걸어서 불공드리러 가셨지. 이 ‘서산마애삼존불상(瑞山磨崖三尊佛像)’이 처음 세상을 놀라게 하기는 1959년이었고 세 해 뒤에 국보 84호로 지정되었다지만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니 할머니 개심사 가는 길에 합장배례 하셨는지도 몰라.
연꽃대좌에 보관을 쓰시고 보주형(寶珠形) 광배에 옷 주름도 선명한 본존 석가여래 뫼시고 왼쪽에는 반가사유의 제화갈라보살, 오른쪽은 미륵보살이 천 몇백 년토록 눈, 비, 바람 속에서도 저리 자비로운 웃음을 띠고 계시다니, 참 잘도 이름 지었지 ‘백제의 미소’라고, 그 웃음 몸 안 가득 담아오고 싶어서 나도 몇 걸음을 했었지.
그때마다 절에 가서 어린 손자 색싯감도 짚어주시던 할머니 생각했는데, 볼수록 우리 할머니 아니신가. 어느새 그 미소 내 눈가에 물기로 어리네. 시인은 ‘천년을 둥글고 환하게 웃고 계시는/석가여래님,/빼어난 명품 하나 주고 간/백제인의 지문이었던가’ 했는데 할머니는 오는 초파일은 어느 절 불공 떡 받아다 손주 입에 넣어주시려나.
이근배 시인·신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