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달 사회부 기자
얼마 전 이런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겠다며 박 시장이 기자들 앞에 섰다. 그리고 10월부터 서울시 산하 15개 공사·공단·출연기관에 ‘근로자 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근로자가 비상근 이사 자격으로 이사회에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공기업의 경영 패러다임을 갈등과 대립에서 상생과 협력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박 시장의 생각이다. 그는 “불신과 갈등, 대립의 시대에 양극단을 조정하고 연결하는 것이 시장의 책무”라며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계획처럼만 된다면 그야말로 가장 완전한 형태의 이상(理想)적인 경영구조다.
문제는 노조도 이 제도를 크게 반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올 초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통합 추진 과정에서 근로자 이사제는 노조를 달래는 ‘당근’이었다. 하지만 노조는 근로자 이사제에 부정적이었다. 매년 막대한 적자에도 꼬박꼬박 성과급을 나눠 받는 상황에서 경영에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근로자 이사제가 노조에도 부담이었을 것이다. 결국 두 기관의 통합도 무산됐다.
그렇다면 박 시장은 왜 이렇게 무모한 실험에 나선 걸까. 일각에서는 대권을 노린 노림수라고 한다. 하지만 박 시장은 “새로운 생각은 언제나 의심받고 반대에 부딪힌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노사가 함께 소통하고 협력하는 판을 넓히는 하나의 방법일 뿐 확대 해석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부는 성과연봉제 도입 등 공공기관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근본적 개혁 없이 근로자 이사제만 도입한다면 공공기관 개혁은 차질을 빚고, 노사 관계는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지나친 경영 간섭이나 철밥통 지키기 같은 관행은 더 노골화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근로자 이사제의 도입에 앞서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맞다.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나 방만 경영, 부패 등 해결해야 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근로자 이사제가 노사 갈등을 한 번에 해결할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노사 갈등을 불러올 또 하나의 잠재적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근로자 이사제보다 국가적 과제인 공공기관 개혁이 먼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조영달 사회부 기자 dalsar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