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에서 물건을 사거나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통성명을 할 때
돌아와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일단 무조건 거만해야 한다
엔젤이라고 발음하는 너의 콩글리시에는 천사가 살지 않는다
(…)
젊어 고생은 사서 하는 것인가, 그렇다
고생은 너의 출세를 위해 가치 있는 것인가, 아니다
항복, 할복, 항복, 할복, 어떤 것이 행복을 위해 더 명예롭고 윤리적인가
학교를 그만둔다 해도 나무랄 사람은 시골에 계신 부모님뿐이고
잉여인간, 너 같은 애들은 값싼 정부미처럼 창고에 넘친다
(…)
항복, 할복, 항복, 할복, 모든 선택은 성적순이며
지하철역에서 무장공비처럼 누워 자는 사내들도 한때는
전투적으로 국가 교육과정을 이수한 자들
황달이 든 너의 얼굴과
고향에 지천으로 피던 민들레꽃이 심리적으로 일치할 때
결핍을 상징하는 그 노란색이 아지랑이처럼 자꾸 어른거릴 때
게임 오버, 넌 끝난 거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부모를 떠나 대도시로 유학 온다. 젊음과 희망을 무기 삼아 뿌리 내리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참 힘들다. 노력이 부족한 걸까. 그렇다면 더 힘을 내봐야지 생각하지만 다리가 후들거린다. 언제까지 전력질주해야 할지 끝이 보이질 않는다. 지쳐 간다. 이 시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게임 오버’ 되었으니 이제 삶은 끝장난 것일까. 우리는 민들레한테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런데 절망도 슬픔도 이 시의 목적은 아니다. 이 시는 슬픈 시가 아니라 화가 난 시다. 그리고 화를 현명하게 내려면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다. 시에 의하면 눈을 크게 뜨고 직시해야 한다. 나, 너, 우리, 사회, 시대에 대해 눈을 감지 말자, 마음아.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