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수석논설위원
노태우(경칭 생략)는 공산권인 소련 중국과 수교를 해 북방외교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은 바 있다. 자신을 정중하게 대하면서도 치밀하게 수사한 젊은 검사 김진태에게 대통령 재직 시 에피소드를 여러 개 들려줬다. 그중 하나가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때 얘기다.
조용한 스타일이면서도 노태우는 ‘북방외교’에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1990년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첫 한소 정상회담을 열고 5개월 뒤 완전한 수교를 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같은 해 12월 노태우는 처음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한다. 두 번째 한소 정상회담에선 ‘모스크바 선언’을 채택해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합의한다.
만찬이 밤참이 됐다. 노태우가 ‘시장이 반찬’이라는 속담에 빗대 “요리 솜씨 나쁜 부인은 저녁을 늦게 내놓지만, 오늘은 귀한 손님을 위한 것이니 최선의 솜씨일 것”이라고 했다. 자정 3분 전 답사를 한 고르바초프도 “내일 회담은 좋은 회담이 될 것”이라고 하다 시계를 보고는 “오늘 회담은…”으로 정정해 웃음을 끌어냈다.
50대 초반의 고르바초프는 스무 살 많은 전임자에게 권력을 물려받았다. 권좌(權座)와 함께 위기를 헤쳐 나갈 노하우도 전수받았다. 그 체험담을 자신을 환대한 노태우에게 들려줬다고 한다. “비책이 담긴 3가지 주머니를 주더라. ‘첫째는 전임자를 쳐라. 둘째는 비판하는 언론을 때려라. 셋째는 달아나라’고 적혀 있더라.”
일부 친박(친박근혜)계는 64세인 박근혜 대통령의 퇴임 후 정치세력화에 열을 올린다. 다른 전임 대통령처럼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지내기엔 너무 젊은 데다 ‘박근혜 브랜드’가 아깝다는 논리도 편다. 100세 시대 운운하며 ‘5년 단임제’는 연임을 할 수 없는 것이니 6년 뒤 대통령에 다시 출마하면 안 될 까닭이 없다는 말까지 그럴듯하게 포장돼 시중에 나돌아 실소를 자아낸다.
어제 박 대통령이 3당 원내대표를 만나 두 야당과의 협치(協治)에 첫걸음을 뗐다. 5년 전 이맘때, 이명박(MB) 대통령에게 “너무 섬처럼 고립돼 있지 마시고 여의도 정치권과도 교류를 좀 하시라”고 한 실세 참모가 직언했다. 그때 MB는 “내가 그 험한 현대건설 사장과 회장까지 하면서 정치인 만나 로비도 하고 온갖 것을 다 했는데…”라며 참모의 말을 일언지하에 잘랐다.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