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안 자고 일해도, 그러고 술 마셔도 괜찮다는 걸 믿게 만든 사람도 김석철이었다. ‘간(肝) 박사’ 김정룡이 “당신 머리보다 간이 더 좋다”고 판정했을 정도다. 그래서 10여 년 전 그가 암에 걸렸을 때 당연히(?) 간암인 줄 알았다. 그런데 위암이었고 다른 암도 줄줄이 찾아왔다. 투병 속에서도 그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2013년 말 대통령 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 제의를 받고는 내게 물었다. “각시(그는 부인을 그렇게 불렀다)가 명 재촉한다고 말려요. 어떻게 해요.” 나는 말했다. “맡으시면 절대로 못 죽어요. 한반도 그랜드 디자인 해둔 거 다 마쳐야 되잖아요.”
▷비무장지대 21세기형 소도시, 서울∼세종시 지하 초고속철도, 한반도 동서 관통 철도운하와 두만강 다국적 도시…. 김석철에게 한반도는 강대국 사이의 ‘새우’가 아니었다. 지정학적 요충지의 무궁무진한 보물섬이었다. 서해의 경제성은 르네상스 시대 지중해를 능가했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을 양 날개처럼 연결시키면 후손이 100년 이상 먹고살 수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그는 대통령 직속 기구 위원장이 되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런 구상을 알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기회가 없다며 가슴을 쳤다. 듣다못해 2년 전 그의 편지를 받아 청와대 부속실에 전달했다. 그러나 지난해 임기를 끝낼 때까지 김석철은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