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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순덕]김석철, “한반도는 보물섬이다”

입력 | 2016-05-14 03:00:00


건축가 김석철과 모스크바 취재를 간 것이 꼭 20년 전이다. 말(言)과 걸음이 머리 회전만큼 빠른 그와 다니는 건 중노동이었다. 눈보라 치는 밤에 또 성 바실리 사원을 보러 가자기에 “낮에 실컷 봤다”며 손을 내저었다. 김석철은 빙그레 웃으며 혼자 나갔다. 그리고 동아일보 ‘천년 건축’ 특집에 “모든 위대한 예술처럼 바실리 사원은 잠자는 우리의 영혼을 흔든다”라고 써주었다. 그때 잠자던 나는 죽고 싶었다.

▷천재는 안 자고 일해도, 그러고 술 마셔도 괜찮다는 걸 믿게 만든 사람도 김석철이었다. ‘간(肝) 박사’ 김정룡이 “당신 머리보다 간이 더 좋다”고 판정했을 정도다. 그래서 10여 년 전 그가 암에 걸렸을 때 당연히(?) 간암인 줄 알았다. 그런데 위암이었고 다른 암도 줄줄이 찾아왔다. 투병 속에서도 그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2013년 말 대통령 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 제의를 받고는 내게 물었다. “각시(그는 부인을 그렇게 불렀다)가 명 재촉한다고 말려요. 어떻게 해요.” 나는 말했다. “맡으시면 절대로 못 죽어요. 한반도 그랜드 디자인 해둔 거 다 마쳐야 되잖아요.”

▷비무장지대 21세기형 소도시, 서울∼세종시 지하 초고속철도, 한반도 동서 관통 철도운하와 두만강 다국적 도시…. 김석철에게 한반도는 강대국 사이의 ‘새우’가 아니었다. 지정학적 요충지의 무궁무진한 보물섬이었다. 서해의 경제성은 르네상스 시대 지중해를 능가했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을 양 날개처럼 연결시키면 후손이 100년 이상 먹고살 수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그는 대통령 직속 기구 위원장이 되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런 구상을 알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기회가 없다며 가슴을 쳤다. 듣다못해 2년 전 그의 편지를 받아 청와대 부속실에 전달했다. 그러나 지난해 임기를 끝낼 때까지 김석철은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천재는 독재자를 만나야 꿈을 펼칠 수 있다던가. 그가 그제 한반도 하늘 위로 떠났다. 이 국토가 한국인에게 신이 준 축복임을 알려준 김석철 역시 신의 선물이었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