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대표 정치인 부인들의 ‘3색 내조열전’
《야권에 새로운 ‘3김(金)’이 떴다. 이번에는 성(性)이 다른 3김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부인 김미경 이화여대 명예교수, 문재인 전 대표의 부인 김정숙 씨, 그리고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의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가 그들이다. 이들은 내조와 외조의 울타리를 오가며 남편의 정치적 성공 가도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신(新) 3김’을 조명해봤다. 당 정비에 힘을 쏟고 있는 새누리당에 유력 주자들이 나타나면 그들의 부인 열전도 이어갈 예정이다.》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 부인 김미경 이화여대 명예교수▼
비서-특보 역할에 코디까지 척척
김종인 비대위원장 수락 당시 읽은 ‘입당의 변’ 원고도 김 교수의 작품
상황 판단이 빠르고 바로 실행에 옮기는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에게 꼼꼼하고 차분한 성격의 김미경 이화여대 명예교수(앞줄 오른쪽)는 호흡이 가장 잘 맞는 파트너다.3월 더민주당 박용진 당선자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김 교수. 동아일보DB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부인인 김미경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역할에 대해 김 대표의 측근은 이같이 설명했다. 김 교수는 공식적인 대외 행보는 자제하고 있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김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챙긴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대표의 측근은 “식품영양학과 교수 출신인 김 교수가 김 대표의 식단을 알뜰히 챙기는 것은 기본”이라며 “언론 모니터링, 메시지 관리 등에도 김 교수가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1월 김 대표가 더민주당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며 낭독한 ‘입당의 변’도 김 교수의 작품이다. 4·13총선 유세 과정에서 김 대표의 연설문을 최종적으로 다듬은 이도 김 교수였다. 2012년 김 대표가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맡았을 때는 두 사람이 집에서 ‘보수란 무엇인가’ ‘정당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등의 주제로 토론을 하고 이를 토대로 김 대표가 회의 원고 등을 작성하기도 했다.
당무 거부 파동 당시 김 대표의 넥타이 코디를 통한 정치적 메시지 전달도 김 교수의 작품이었다. 처음 당무 거부를 선언한 3월 22일 김 대표는 노타이 차림으로 기자들을 만났고, 23일 문 전 대표를 만난 이후에는 청색과 붉은색 무늬가 섞인 넥타이를 맸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노타이는 더이상 대표를 맡지 않을 테니 넥타이 맬 일이 없다는 의미였다”며 “다음 날 맨 넥타이는 당내 인사들의 설득으로 복잡해진 김 대표의 심경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의 사촌동생인 김창경 한양대 교수는 “정치적 대화가 많았던 집안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의 아버지는 김정호 전 한일은행장이고, 작은아버지는 김정렴 전 대통령비서실장이다. 김 교수는 “주말마다 할아버지 댁에서 아버지, 작은아버지가 모여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셨다”며 “정치와 경제 현안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자연스럽게 (정치에) 익숙해진 것 같다”고 했다. 김 대표가 젊었을 때부터 할아버지인 가인 김병로 선생 곁에서 정치 감각을 키운 것과 비슷하다.
다만 김 교수는 공식 행사에 참석하거나 동료 의원의 부인들을 만나는 등의 공식적인 대외 활동은 자제하고 있다. 4·13총선 당시에도 김 교수가 공식 행사에 참석한 것은 박용진 당선자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이 유일했다.
그 대신 김 교수는 김 대표의 유세 연설 모니터링과 현장 분위기 파악 등을 위해 두 차례 정도 비공개로 유세 현장을 찾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김 대표가) 곧 대표직에서 물러날 텐데 굳이 나까지 여기저기 나설 필요는 없지 않느냐”며 “김 대표가 후두염 수술을 받은 직후라 식단과 건강관리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 부인 김정숙 씨▼
최고위원들 집으로 초대 ‘화해 만찬’
여기자들과의 오찬땐 가곡 한 곡조
“文의 에너자이저, 정치적 치어리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부인 김정숙 씨와 집에 있을 때 가장 휴식다운 휴식을 취한다. 2012년 11월 대선 때 선거유세를 펼치는 문 전 대표에게 김 씨가 꽃다발을 안겨준 뒤 부부가 파안대소하고 있다.
사실 이날 만찬 자체가 김 씨의 작품이었다. 당내 갈등이 격화되자 김 씨가 문 대표에게 최고위원들을 집으로 초청하자고 제안했다. 문 대표는 “그렇게 (저녁을 같이 먹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라면 벌써 풀렸을 것”이라며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 씨는 “그래도 한번 모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거듭 요청했고 만찬은 성사됐다. 문 대표는 “가능한 한 간단히 차리라”고 신신당부했지만 김 씨는 군소볶음, 전복볶음, 송이소고기구이, 더덕구이, 섭산삼(더덕의 일종) 튀김요리, 대게찜 등 한정식 정찬에 버금가는 음식을 손수 요리해 내놨다.
2012년 대선 때 김 씨를 수행했던 더민주당 유송화 부대변인은 12일 “그게 김 여사”라고 했다. 오는 사람 마다 않고 오히려 사람을 불러 음식 해 먹이는 일을 수고롭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 부대변인은 “(올해 1월 사퇴한) 문 전 대표가 최근 경남 양산 집에 머물 때도 사람들이 끼니때와 상관없이 모여서 음식 내오느라 김 여사 손에 물이 마를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서울시립합창단 단원으로도 활동했던 김 씨는 문 전 대표의 성격과 정반대라는 게 중론이다. 내성적이며 말이 별로 없는 문 전 대표와 달리 김 씨는 다정다감하고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데 적극적이다. 지난 대선 때 별명도 ‘유쾌한 정숙 씨’였다. 당시 홍보 동영상에서 싸이의 ‘말(馬)춤’을 추는가 하면 당내 경선 때는 ‘정숙 씨 세상과 바람나다’라는 인터뷰집을 펴내기도 했다. 자칫 딱딱하고 무뚝뚝해 보이는 문 전 대표의 적절한 보완재다.
지난해 국회에 출입하는 여성 기자들과의 오찬에서는 “저희 남편 때문에 속상하셨죠. 죄송해요”라고 대신 사과했다. 문 전 대표가 기자들의 민감한 질문에 ‘버럭’ 하며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잦았을 때였다. 김 씨는 “남편이 서운하게 하더라도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니니 이해해 달라”고도 했다. 김 씨는 문 전 대표를 “살수록 신뢰감이 가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기자들이 노래를 요청하자 “안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곡을) 생각해 왔다”며 가곡 ‘바우고개’를 불렀다.
이번 4·13총선 때도 새로 이사한 집이 있는 서울 서대문구의 더민주당 출마자 선거사무실로 직접 떡을 들고 찾아가 후보는 만나지도 못하고 전달만 했다고 한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 서대문갑 우상호 원내대표가 길거리 유세를 하는 모습이 보이자 창문을 내리고 “우상호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다. 동네를 돌며 당선사례를 하는 서대문을의 김영호 당선자에게는 집 창문을 열고 “축하해요. 그런데 내가 누군지 모르시죠? 문재인 대표 아내예요”라고 말해 김 당선자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대변인으로 문 전 대표를 보좌했던 김성수 당선자는 “김 여사는 문 전 대표의 정치적 ‘치어리더’”라고 했다. 문 전 대표의 정치적인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유 부대변인은 “문 전 대표가 유일하게 쉴 수 있을 때는 집에서 부인과 같이 있을 때”라며 “김 여사는 ‘난 당신을 믿어요’라는 자세로 문 전 대표의 결정을 존중하고 믿어준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
조용조용한 성격 언론접촉 꺼려
정치인 아내로 3년 ‘스킨십’ 늘어
세월호 참사땐 “현장 빨리 가보세요”
공식적인 대외 활동을 자제해 왔던 김미경 서울대 교수는 이번 4·13총선에서 남편인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를 대신해 지역구(서울 노원병) 선거를 치렀다. 3월 안 대표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나란히 앉은 부부의 모습.
안 대표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교수에 대해 “전문가이고 본인의 영역이 있는 사람”이라며 “조용하게 학생을 가르치고 강의도 많고 지금 논문도 쓰고 있다”고 표현했다. 안 대표 측 관계자는 “김 교수는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다”며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직접 안 대표 측근들에게 연락을 하는 경우도 드물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김 교수는 안 대표를 대신해 지역구인 서울 노원병 선거운동을 전담했다. 안 대표가 지역구 출근 인사와 저녁 집중 유세를 제외하고 하루의 대부분을 전국 지원유세에 썼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유세에서 안 대표의 정치적 고향인 노원병에 대한 애정, 지역구를 떠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부각시켰다고 한다.
김 교수는 이번 총선에서도 거리 유세 등에 부담을 많이 느끼는 것으로 보였지만 정치인의 아내로 3년여 시간을 보내면서 좀 더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는 후문이다. 노원병 선거캠프에 참여했던 한 측근은 “(김 교수가) 지역의 각종 단체나 어린이집, 경로당, 상가 등을 일일이 돌고 관내 지도에 표시한 동선이 거의 가득 찰 정도로 분주하게 돌아다녔다”며 “아줌마, 노인들과 포옹을 하며 친밀도를 표시하고 스킨십은 오히려 안 대표보다 나은 것 같았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안 대표에 대한 존경심을 주변에 자주 표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교수는 몇 년 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의사였던) 남편이 천재라고 생각했다. 계속 (생리학) 공부를 하면 노벨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컴퓨터 백신프로그램 V3를 개발했을 땐)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길로 가 그걸 완성하는 모습에 나도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안 대표는 “(아내가) 항상 묵묵히 (내) 판단을 믿어준다”고 했다.
안 대표도 김 교수의 조언을 귀담아듣는다고 한다. 김 교수의 조언을 직접 소개한 적도 있다. 국민의당 지지율이 8%까지 추락하던 3월 초 그는 노원병 출마선언문에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아도, 호사가들의 안줏거리가 돼도, 언론의 조롱거리가 돼도, 여의도의 아웃사이더가 돼도, 소위 정치 9단의 비웃음거리가 돼도 아내는 ‘처음 시작할 때 그 마음만 변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말한다”고 했다.
김 교수의 고향이 전남 여수라는 점도 안 대표에겐 큰 힘이 된다. 부산 출신인 안 대표는 호남 방문 때마다 ‘여수 사위’라는 점을 자주 언급한다.
안 대표는 “(아내가 나 때문에 피해를 봐서) 항상 미안하다”고 했다. 안 대표 못지않은 ‘융합 전문가’인 김 교수가 자신에게 가려져 있다는 안타까움의 표현이다. 의대 교수에서 컴퓨터 전문가이자 경영인, 교수, 정치인으로 변신한 안 대표처럼 김 교수도 의대 교수로 재직하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특허법, 의료법 등을 공부하며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 KAIST를 거쳐 2011년 서울대로 옮긴 김 교수는 생명윤리 등 법의학 분야를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 의대 1년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대학 시절 가톨릭학생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만나 결혼에 성공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