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소비자경제부 차장
김상훈 소비자경제부 차장
19세기 들어 아일랜드에 대흉작이 발생해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농민들은 토지동맹을 결성해 관리인이나 지주들을 상대로 소작료를 깎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다 한 농장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퇴역 군인인 관리인이 소작료를 내지 않는 농민을 쫓아내려 한 것이다.
아일랜드 농민과 가족들은 조직적으로 맞섰다. 추수철이 다가왔지만 아무도 그 농장에서 일을 하지 않았다. 관리인의 집에서 일하던 하인은 철수했다. 상인들은 그 관리인에게 물건을 팔지 않았다. 집배원도 투쟁에 동참해 관리인에게는 우편배달을 하지 않았다.
당시 농민들은 사회적 약자였다. 영국 고관대작의 권력을 등에 업은 관리인과 투쟁하는 것은 맨주먹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하지만 농민들은 승리를 거뒀다. 전혀 폭력을 쓰지 않고도 말이다. 이 사건을 통해 약자도 뭉치면 강력한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당시 관리인의 이름은 찰스 보이콧. 오늘날 불매 운동을 뜻하는 영어 단어 보이콧(Boycott)은 그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불매 운동은 20세기 초반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 지배에 저항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영국의 지배를 받던 인도는 광범위한 비폭력 투쟁을 하면서 영국 상품을 사지 말자는 보이콧 운동을 전개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벌였던 물산 장려 운동도 보이콧 운동이었다. 현대로 접어든 후에는 제3세계에서 인권을 유린하거나 환경을 오염시키는 다국적 기업이 종종 불매 운동의 타깃이 됐다.
국내에서도 기업들을 상대로 한 불매 운동이 종종 벌어졌다. 그때마다 해당 기업은 휘청거렸다. 매출은 급락하고 기업에 대한 신뢰도는 추락했다. 이른바 ‘갑질’을 했다가 호되게 당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3년 전 남양유업은 대리점에 제품을 떠넘기는, 이른바 ‘밀어내기 영업’을 하다 불매 운동의 표적이 됐다. 얼마 전에는 김만식 몽고식품 전 명예회장이 운전기사를 폭행했다가, 미스터피자를 운영하는 MPK그룹의 정우현 회장이 경비원을 폭행했다가 소비자의 분노를 샀다. 그래도 이런 불매 운동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잦아든다. 해당 기업이나 경영자가 사과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 때문이다.
옥시레킷벤키저(옥시)에 대한 불매 운동이 심상치 않다.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음은 물론이고 소비자와 시민단체들이 “부도덕한 옥시를 시민의 힘으로 퇴출시키겠다”고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유통업체들도 불매 운동에 동참했다. 지금까지의 불매 운동과는 차원이 다른 분노가 느껴진다.
옥시 제품으로는 표백제(옥시크린과 옥시크린오투액션), 제습제(물먹는 하마), 탈취제(냄새먹는 하마), 세정제(데톨), 섬유유연제(쉐리) 등이 있다. 청소용품(이지오프뱅)과 세탁용품(파워크린) 외에 위장약(개비스콘)도 판매 중이다. 한때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던 이런 제품들이 잇따라 매장 판매대에서 사라지고 있다. 아예 시민단체들은 옥시 제품 125개의 리스트를 인터넷에 공개해 불매 운동을 독려하고 있다.
옥시가 처한 상황이 19세기 말의 보이콧과 흡사하다. 사회적 약자였던 농민들은 똘똘 뭉쳐 보이콧을 쫓아냈다.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도 똘똘 뭉쳐 옥시와 싸우고 있다. 보이콧이 아일랜드를 떠나야 했듯이 옥시도 한국을 떠나야 할지 모른다. 대한민국 사람들의 분노를 옥시는 직시하길 바란다. 대한민국이 원하는 것은 옥시의 진정성이다.
김상훈 소비자경제부 차장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