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탐사기획 프리미엄 리포트/‘글로벌 빅마켓’ 공유경제]규제-기득권 벽에 막힌 한국
“모든 것을 공유합니다.”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소유’가 아닌 서로 빌려 쓰면서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공유경제가 한국에선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규제와 기득권 사업자들의 반발로 첫발도 떼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 세계적 숙박 공유 업체인 ‘에어비앤비’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서울’을 치면 300곳 이상의 국내 숙박 시설이 검색된다. 하지만 이 중 상당수는 현행법상 불법이다.
현재 한국에서 관광진흥법의 관광숙박업으로 등록하지 않고 자신의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을 돈을 받고 빌려주면 법 위반이다. 개인이 자신의 집을 ‘외국인관광 도시민박업’으로 등록했더라도 한국인에게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면 처벌을 받는다.
에어비앤비에서 이뤄지는 ‘불법 행위’를 사실상 방치했던 정부는 2월 ‘신산업 육성·규제 완화 등 투자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숙박 공유 서비스의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나섰다. ‘공유 민박업’이라는 항목을 신설해 시범 지역(부산 강원 제주)의 230m²(약 70평) 미만 주택에서 연간 최대 120일간 숙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규제 프리존 특별법’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기존 사업자들의 반발도 공유경제 성장의 장애물이다. 공유경제의 대표적 기업인 우버가 한국에서 철수한 데 이어 지난해 말 등장한 심야 콜버스 역시 기존 사업자와의 충돌을 겪고 있다. 이 서비스는 심야에 택시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서울 강남역 등지에서 승객과 대리운전사들의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승객을 빼앗긴 택시 운전사들이 “노선이 정해지지 않은 버스 영업은 불법”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에 정부는 영업시간대 조정을 위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지만 당초 심야 콜버스가 소비자들에게 준 혜택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공유경제를 이용하면 7달러에 서핑보드를, 30달러에 미니밴을 하루 동안 빌릴 수 있다. 출처 글로벌 컨설팅 기업 PwC
▲평소에는 잘 입지 않는 정장과 넥타이, 벨트, 구두 등을 빌려 쓸 수 있는 공유경제 서비스 ‘열린 옷장’. ‘열린 옷장’ 홈페이지 캡쳐
○ 한국 특성 반영한 공유경제 필요
한국에서도 글로벌 흐름에 맞춰 공유경제 산업을 키우려면 ‘공유경제 특별법’ 같은 혁신적인 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송순영 한국소비자원 선임연구위원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 개별 법령에서 공유경제를 제한하고 있는 사항에 대해 규제 일괄 완화를 시도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공유경제 기업들 역시 기존 업체들을 기득권이라고 무작정 몰아붙일 게 아니라 전체 파이를 키워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놔야 한다. 가령 샌프란시스코 지역 호텔의 투숙률은 에어비앤비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2008년 78.9%에서 2012년 82.7%로 높아졌다. 숙박 공유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전체 여행객 수가 늘고, 여행객이 머문 도시에서 전체 숙박 서비스가 활성화됐다는 의미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한국적인 정서와 문화, 제도에 적합한 공유 서비스를 찾아내고 개발한다면 다른 나라와 차별화된 한국식 공유경제의 모델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신무경 기자 fighter@donga.com·정세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