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양대학교 창의융합대학의 수업 광경. ‘프로젝트 기반’ 수업에 적합하도록 책상도 맞춰져 있다. ‘여러 명의 생각을 모으다 보면 새로운 게’ 나오고 이게 창의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대학의 교육방법에 깔려 있다. 건양대학교 제공
건양대학교 창의융합대학 학생들이 KT가 주관한 ‘제6회 창의메이커스데이 3D프린팅을 이용한 드론 재난구조 경진 대회’에서 최우수상, ‘3D 드론 창의 아이디어 공모전’(2015.6.4)에서 대상, 우수상 등을 수상했는데, 이는 창의융합대학의 프로젝트 교육의 성과다. 건양대학교 제공
창의융합대학의 시험은 전부 ‘무감독’ 이다. 학생들은 입학 초 명예선언을 하는데, 감독이 없어도 정직하게 시험을 본다는 무감독 시험은 ‘명예선언’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건양대학교 제공
창의융합대학을 이끌고 있는 김두연 부학장은 교육부에서 ‘혁신’을 주도한 인물로 그를 통해 ‘혁신 DNA’가 대학에 들어가는 중이다. 김 부학장은 10년 뒤에 올바른 평가가 내려지겠지만 당장 첫 입학생인 현 4학년들의 진로가 창의융합대학의 성패를 가름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결과는 긍정적일 것’이라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건양대학교 제공
충남 논산의 건양대학교에 ‘꿈나무’ 한그루가 있다. 이 나무에는 한국 대학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할 ‘혁신 DNA’가 들어 있다. 나무를 심은 지는 갓 4년. 그러나 튼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바로 창의융합대학이다.
아이디어는 대학 설립자인 김희수 총장이 냈고, 실무는 삼성그룹에서 근무했던 최현수 학장과 교육부에 몸담았던 김두연 부학장이 이어서 총괄하고 있다. 김 부학장은 교육부,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등에서 교육정책 수립과 교육혁신 연구를 주도했다. 최근에는 학생의 수준과 적성, 소질에 맞는 교육인 초중고 스마트교육 추진전략을 수립하고 4년 전까지 실무를 맡아왔다. 건양대는 이 창의융합대학을 전폭 지원하고 있다. 혁신적인 CLD(Creative Learning by Doing) 교육을 위해 강의실을 기존의 일자식에서 원탁형으로 전면 교체하고, 학생들이 늘 팀 활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을 키우도록 하고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전문가들의 수업을 듣기 위해 원격 교육시설도 갖추고 있다.
창의융합대학 안에는 ‘융합IT학과’ ‘의약바이오학과’ ‘융합디자인학과’ ‘글로벌프런티어학과’ 등 4개 학과가 있다. 이름만 봐서는 왜 묶어놨는지를 알기 어렵다. 김 부학장은 4개 학과를 묶어 한 대학으로 만든 이유를 “학과만의 전문성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걸 만들어 내려면 융합밖에 길이 없다”고 설명한다. IT와 디자인에 융합을 붙인 것도 IT와 디자인 분야에서의 융합뿐 아니라 상이한 학과와의 융합에 바탕을 둔 교육을 한다는 의미다. 글로벌프런티어학과는 해외시장 개척과 글로벌 마케팅 등 대외 통상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게 목표다. 의약바이오학과는 산업 규모 3.5%에 불과한 국내 바이오산업을 육성하려는 국가 전략에 호응하고 김안과로 유명한 건양대의 의학 DNA를 따르기 위한 것. 4개 학과는 모두 2012년과 2013년에 문을 열었다. 학교 내에 있는 비슷한 학과를 제쳐 두고 새로운 과를 만든 이유는 역시 혁신 때문이다. 기존 학과의 교육방법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아예 새로운 학과를 만든 것.
기자는 이게 과연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다. 김 부학장의 말이다. “융합디자인 학과 학생들은 울면서 수학을 공부한다. 하지만 다 따라온다. 1학년 창의수리 톱10 안에 디자인학과 학생이 4명이나 있다.” 미술 전공자가 과연 수학을 할 수 있을까란 편견을 창의융합대학이 깨고 있는 것이다. 김 부학장은 융합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공부만 했으니까 저런 건 못하겠지’란 선입견은 위험하다. 가르쳐 보면 고등학교 하위권 학생이 상위권 학생보다 더 잘하는 경우도 많다.”
융합디자인 학과 이연재 씨는 이과 과목이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쉬운 과목도 있고 어려운 과목도 있다. 융합 IT전공의 ‘데이터 통신’을 들으면서 학교 건물에 통신망을 설치한다면 허브나 라우터 등을 어디에 설치하고 배선을 어떤 경로로 깔지에 대해 팀원들과 토론했다. 융합IT 과목에 흥미가 있음을 알았다. IT와 디자인이 융합된 직업을 원한다. 디자인할 때 이런 경험들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이 씨의 말처럼 창의융합대학 수업의 특징은 ‘팀 단위 프로젝트 수행’이다.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다 보면 새로운 걸 찾을 수 있다’라는 생각이 팀제를 도입한 가장 큰 이유. 팀은 5명 내외로 구성하며 강의실에서 배운 것을 실습을 통해 자기 것으로 만든다. ‘데이터 통신’ 과목의 경우 엠텔러 연구소장인 이석주 상무가 ‘근접통신’에 대해 가르쳤고, 최정규 대우정보통신 연구원이 ‘데이터통신 프로토콜’에 대해 강의했다.
창의융합대학은 독특한 CLD(Creative Learning by Doing) 교육방식을 시행한다. 이는 학생들의 자율성과 팀 활동 기반의 문제해결역량을 키워주는 학습방법으로, 프리클래스(선행학습), 인클래스(본학습), 포스트클래스(심화학습)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프리클래스가 중요하다. 이 씨가 융합 IT과목과 화학 물리 등 이과 강의를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었던 데는 선행학습인 ‘플립러닝(FLIPPED LEARNING)’ 덕분이다. 창의융합대학의 모든 강좌는 플립러닝 방식을 채택한다. 선행학습은 대개 하루 2시간 공부할 분량으로 짜여 있고, 수업 2주 전 학생들에게 자료를 나눠준다. 학생들은 받은 자료로 공부를 한 후 강의에 들어간다. 미리 공부를 한 덕에 처음 듣는 강의라도 이해도가 높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이해도를 과제와 토론을 통해 체크한 후 이해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보충설명을 한다. 첫 강의에 평가를 하고 그것을 바로 성적에 반영하는 교수도 있어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다. 전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레지덴셜 칼리지’를 운영하는 것도 학생들에게 더 많은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매일 밤 11시까지 공부해야 할 만큼의 과제를 내주는데, 이를 차질 없이 하려면 기숙사 생활이 필요하다고 본 것.
창의융합대학은 4주가 1학기로 구성된 ‘1년 10학기’제를 채택하고 있다. 다른 대학의 1학기가 창의융합대학에서는 5학기인 셈이다. 과목은 일주일에 4번(월, 화, 목, 금)의 집중적인 강의로 한 달 안에 끝낸다. 수학 과학 등 일부 과목에 한해 두 달을 한 학기로 운영한다. 방학 중 한 달은 ‘집중학기’로 국내외에서 현장실습을 한다. 다양한 현장실습이 가능한 이유는 창의융합대학이 맺고 있는 30여 개의 가족기업과 교수의 반 정도가 삼성, 현대, KOTRA 등에서 근무한 덕이다. 글로벌프런티어학과의 옥준태 씨는 “여름방학 때 집중학기를 이용해 일본 도쿄의 면세점에서 근무했다. 마케팅 과목에서 배운 ‘제품 진열’에 대한 이론이 어떻게 현장에서 적용되는지를 봤다”고 말했다.
모듈 개설과 프로그램들은 ‘학생 중심 수업 설계’, ‘수업담당자 선정 적합’, ‘학습 피드백 계획 적절성’ 등 10개 항목을 각 전공 분과의 검토를 거친 후 최종적으로 ‘교육품질위원회’ 등을 통과해야만 현실화된다. ‘4주 1학기’ ‘플립러닝’ ‘모듈식 교육’은 ‘공부하는 교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전공 교수들은 한 달에 한 번 모듈 개설과 프로그램 설계를 하고 2주에 한 번 ‘플립러닝’ 교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교수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창의융합대학의 4개 학과가 기존의 학과를 이용하지 않고 새로 만들기로 한 것도 교수의 연구 능력과 열정이 교육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부학장은 전임교원 충원도 ‘학위보다는 역량’이라고 말한다.
논산=이종승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전문기자(www.daese.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