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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트럼프의 키스

입력 | 2016-05-17 03:00:00


1979년 10월 7일 동독 정권 수립 30돌 기념행사가 열린 동베를린. 나이 지긋한 두 남자가 열정적 키스를 나눴다. 그것도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거침없는 키스의 주인공은 옛 소련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동독 에리히 호네커 서기장. 프리랜서 사진가 레지스 보쉬가 포착한 이 순간은 ‘냉전의 현장’과 ‘견고한 사회주의의 카르텔’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이미지로 남게 됐다.

▷두 권력자의 키스는 1990년 동베를린에서 또 한 번 이목을 끌었다. 이번엔 사진을 옮긴 그림을 통해서다. 독일은 베를린 장벽 붕괴를 기념해 21개국 117명 예술가를 초청해 남아 있는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도록 했다. 그때 러시아 아티스트 드미트리 브루벨이 키스 사진을 벽화로 제작한 뒤 ‘신이시여, 내가 이 치명적 사랑을 딛고 살아남게 도와주소서’란 문구를 써 넣었다. 이 벽화는 베를린 장벽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가 됐다.

▷사회주의자끼리는 포옹한 뒤 서로의 뺨을 대고 세 번 볼키스하는 것이 ‘형제의 인사’로 통한다. 이상(理想)을 공유하는, 돈독한 우정의 표시라는데 동방 정교회 의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브레즈네프-호네커 키스를 패러디한 벽화가 리투아니아 수도의 한 식당 외벽에 등장했다. 사회주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나 먼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커플을 이룬 점이 흥미롭다.

▷트럼프와 푸틴은 자아 과잉에 안하무인, 남성적 허세를 내세운 마초 이미지란 점에서 닮은꼴이다. 작년 연말에 푸틴이 “아주 활달하고 재능 있는 사람”이라고 트럼프를 상찬하자 트럼프는 “푸틴을 좋아한다”며 화답했다. 남자 간의 친밀한 관계를 뜻하는 ‘브로맨스’란 표현이 나올 만큼 죽이 잘 맞아 보인다. 호네커는 1989년 동독 정권 수립 40돌 기념으로 방문한 옛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과도 키스했지만 개방 요구를 외면하다 11일 만에 쫓겨나고 베를린 장벽도 무너졌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못 말리는 남남(男男) 커플은 과연 지구촌에 어떤 지진을 불러올까.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