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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 헤어짐, 그 이후에 남겨진 것들

입력 | 2016-05-17 03:00:00


에곤 실레의 ‘죽음과 소녀’.

에곤 실레(1890∼1918)는 오스트리아의 화가입니다. 분출하는 생의 에너지와 배회하는 죽음의 공포를 관능적으로 표현했지요.

스물여덟, 짧은 생을 살다 간 화가는 100여 점의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자화상 속 화가는 자기 과시적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자기 변호적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벌거벗은 몸으로 쾌락을 좇기도 하고, 경계의 시선으로 욕망을 응시하기도 합니다. 화가는 성적 욕망과 운명의 비극 사이에서 서성였습니다. 아버지와 형제들을 잃은 청소년기 이후의 일이었지요.

1910년 화가는 예술의 도시 빈을 떠났습니다. 조용히 머물 곳을 찾아 이주했지만 정착은 쉽지 않았습니다. 자유분방한 사생활과 외설적인 그림이 문제였지요. 이웃들은 낯선 이방인을 추방하려 했고, 어린 소녀 유괴 혐의로 고소까지 했어요. 의혹과 혐의가 끊이지 않는 삶과 미술이었습니다. 그런 화가 곁을 예술의 뮤즈이자 삶의 동반자가 지켰지요. 화가의 스승이었던 클림트의 모델이었던 발리 노이칠이었어요. 열일곱 살 모델과 스물두 살 화가가 만나 4년간 열정을 나누었습니다. 사랑은 1915년 끝이 났습니다. 화가가 다른 여성과 결혼을 했거든요.

떠난 사람은 화가입니다. 하지만 사랑에 버림받은 쪽도 화가였지요. 결혼 후에도 관계를 지속하려는 이기적 계획을 옛 애인이 거절한 것이었어요. ‘죽음과 소녀’는 두 사람이 결별한 해 제작된 그림입니다. 이별의 당사자들을 이렇게 형상화했군요. 음산한 공간에서 남녀가 절망의 포옹을 나눕니다. 서로의 등과 어깨를 감싸 안으려 앙상한 두 팔과 뼈마디 굵은 손을 뻗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이 기묘하게 불편해 보입니다. 사랑의 격정은 지나고, 관계의 마지막 절차만 남은 까닭일까요.

사랑이 끝난 뒤 남겨진 물건들을 소개하는 이색 전시가 제주에서 펼쳐지고 있답니다. 전시 기획은 2006년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 문을 연 실연박물관에서 맡았다지요. 사별한 남편이 몰았던 자동차부터 사랑과 맞바꾼 트로피까지 전시품들이 결별의 이유만큼 다양하기도 합니다. 만남과 헤어짐의 어려움이 어느 때보다 구체적으로 토로되는 지금, 산산이 조각난 관계의 물증들만큼 이 문제에 대해 많은 말을 건넬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요. 연인과 헤어진 화가가 남긴 상실과 연민의 그림이 그 어떤 연애의 기술보다 노골적으로 관계의 속살을 드러내는 듯합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