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 맨부커상 수상]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賞 수상… 한국인 최초 ‘세계 3대문학상’ 쾌거 “아름다움과 잔혹 결합된 놀라운 작품”
16일 열린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시상식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소설가 한강씨. 그는 “내가 소설 속에서 던진 질문을 독자들이 공유해 줘서 감사하다”면서 “이 기쁨을 가족과 친구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 이매진스
한강 연작소설 ‘채식주의자’의 한국어판(왼쪽)과 영역판 표지.
이 장면에서 작가의 어린 시절과 작품이 겹쳐진다. 그는 흰 손가락으로 종이 피아노를 치던 어린 소녀였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피아노를 사달라고 부모님께 애타게 조르지 못하고 종이로 피아노를 만들어 가만가만 쳤던 그다. 내성적인 반면 표현하려는 것을 온몸으로 조용히 담아내려고 분투해온 작가였다. 그 모습은 폭력에 저항하면서 스스로 나무가 되고자 한 수상작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와도 닮았다.
▼ 영문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도 공동 수상 ▼
16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맨부커상 시상식장에 다정하게 앉아 있는 한강 씨와 포르토벨로 출판사 수석편집자 맥스 포터 씨,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 씨(오른쪽부터). 창비 제공
연세대 국문과에 들어와서도 미래가 막연했던 대학 시절, 작가는 어느 순간 자신이 꿈꾸는 소설을 직접 써야겠다는 생각에 습작을 시작했다. 1993년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취직한 뒤 하루에 3, 4시간만 자면서 글을 썼다. 퇴근하고는 어서 책상으로 가고 싶어 집으로 뛰었다. 그 간절한 마음은 등단을 하고도, 아이를 낳고도, ‘채식주의자’를 쓸 때도 달라지지 않았다. 가까운 문인의 얘기를 빌리면 그는 ‘죽을 각오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다. 작가 스스로 작품을 끝내면 그 작품처럼 살았다는 느낌 때문에 진이 다 빠진다고 했다.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로 꼽히는 맨부커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밝힌 그의 수상 소감은 차분했다. 말수가 적지만 자신의 생각을 밝힐 때는 자신이 쓰는 글처럼 아름답고도 묵직한 문어체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작가다. 그는 이날 천천히 또렷하게 영어로 소감을 밝혔다. “책을 쓰는 것은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고통스럽고 힘겨웠지만 가능한 한 계속해서 질문 안에 머물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채식주의자’에 대해 “이 작품에서 내가 던지고자 한 질문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였다”고 말했다. 특유의 환한 눈웃음을 지으면서 그는 만찬이 열린 시각 새벽을 맞은 고국을 향해 “깊이 잠든 한국에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보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