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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토사구팽’ 남기고 은퇴… 월간 ‘샘터’ 창간한 김재순 前 국회의장

입력 | 2016-05-18 03:00:00

이승만 개헌 반대하다 투옥… 신익희-장면 등 인연 정치 입문
7선 의원… 1988년 의장 맡아… YS 대통령 만들기 앞장섰지만
재산공개 파문에 정계은퇴 선언




김재순 전 국회의장(사진)이 17일 오후 3시 40분경 경기 하남시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호는 우암(友巖). 강원도 철원, 화천, 양구 등의 지역구 6선과 유신정우회 의원으로 모두 7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13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냈다.

고인은 1923년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상업학교, 서울대 상대를 졸업했다.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의 직선제 개헌을 둘러싼 부산정치파동 때는 전시(戰時)연합대학 총학생회장으로 이에 반대하다 3개월간 투옥됐다. 이때 알게 된 신익희 조병옥 장면 등과의 인연으로 1954년 민주당에 입당했고 1960년 4·19혁명 직후 열린 5대 총선에서 민의원으로 선출됐다.

장면 정부에서 재무부 정무차관을 맡았지만 1961년 5·16군사정변 직후 반혁명사건에 연루돼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박정희 정권 초대 경호실장을 지낸 홍종철 등의 추천으로 공화당에 입당해 6∼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공화당 내 권력 갈등 속에서 김종필계로 낙인찍혀 1973년 9대 총선에서는 지역구 공천을 받지 못하고 유정회 의원으로 국회에 들어갔다. 이때 얻은 쇼크로 수년간 투병생활을 하면서 국회에는 단 한 번 출석했다.

1970년 국회 상공위원장 시절 기능올림픽대회에 선발된 기능공들과 만나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못 가 원망스럽다”는 말을 듣고는 이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주겠다는 생각에 월간 교양지 ‘샘터’를 만들었다. 그해 4월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창간호를 낸 ‘샘터’는 피천득, 법정, 이해인, 최인호 등 유명 작가의 연재를 실으며 2011년 지령 500호를 넘었다. 고인은 2007년 피천득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첫눈이 내리면 서로 알려주기로 한 약속을 약 40년간 지키기도 했다.

제5공화국 동안 야인으로 살았던 고인은 1987년 대선 직후 민족화합추진위원회 참여를 계기로 민정당에 입당해 ‘풍상(風霜)의 정치인’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1988년 여소야대 13대 국회의 국회의장으로 한 개원식 연설에서 “이번 정당별 의석 분포는 두려움을 느낄 만큼 신비롭다. 4당 병립의 새 판도는 각계각층이 아무도 소외되지 않은 것이다. 대화와 타협의 전통을 세울 황금분할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1992년 대선에서 민정계 출신으로 김영삼 대통령을 적극 지원했지만 이듬해 공직자 재산공개 과정에서 부정축재 의혹이 일면서 사퇴 압력을 받았다. 고인은 ‘토사구팽(兎死狗烹·토끼를 잡은 사냥개도 쓸모가 없어지면 잡아먹는다는 뜻)’이란 말을 남기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는 이회창 당시 후보를 돕기 위해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진한 냄새의 시가를 즐겨 피우던 고인은 반공(反共)을 중심으로 한 확고한 보수적 정치관과 설득력 있는 화법으로 존경을 받았다. 고인은 몇 년 전 펴낸 책에서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 그렇다고 죽음이 인생이나 기쁨까지도 손상시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용자 씨와 아들 성진 성린 성봉 성구 씨 등 4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21일 오전. 02-3010-2631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