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회자되는 協治… 본래 의미에서 크게 어긋나 한때의 合意가 지금은 협치로… 겉멋만 가득한 혼란스러운 용어 수지는 왜 섹시하지 않을까… 보수의 혁신은 섹시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가치 추구하는 것
송평인 논설위원
국회선진화법을 만들 때는 합의(合意)란 말이 유행했다. 이번에는 협치(協治)라는,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은 말이 본래의 사회과학적 의미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유행하고 있다. 협치는 영어 거버넌스(governance)를 번역한 말이다. 여기서의 거버넌스는 관(官)의 민(民)에 대한 일방적 통치(統治)와 구별되는 민과 관의 상호 대등한 협치를 말한다. 여야(與野)의 합의나 타협과는 카테고리 자체가 다르다. 그런데도 여야 정치인들은 여야의 협치 운운하며 새로운 시대정신인 양 내세우고 있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국회선진화법이라는 비극으로, 한 번은 협치라는 소극(笑劇)으로. 협치를 한국식으로 해석해서 여야의 합의나 타협이라고 해보자. 협치가 결렬될 때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이 없는 협치는 무의미하다. 그렇게 최초의 협치 시도인 5·18 기념식에서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이 한 편의 웃지 못할 소극으로 끝났다.
국회선진화법은 남경필류의 비박 쇄신파가 주도해 통과시킨 것이다. 최경환 등 상당수 친박 의원들은 박근혜의 찬성에도 불구하고 이 법에 반대표를 던지거나 기권했다. 보수는 어디서나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전통을 존중한다. 보수라면 합의가 되지 않을 때 과반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일상생활에 뿌리박은 민주주의를 함부로 바꿀 수 없다. 국회의 의결정족수를 5분의 3으로 바꾸는 꼼수는 세상사의 엄중함을 아는 보수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비박은 쇄신, 친박은 반(反)쇄신으로 일률적으로 구별할 순 없다. 친박과 비박은 무엇이 쇄신인지를 놓고 싸워야지 서로를 향해 친박이니 비박이니 낙인찍는 것으로 쇄신을 대신하려 해선 안 된다. 다수의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지난달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등을 돌렸다. 친박 이한구의 공천 전횡이 꼴 보기 싫어 등 돌린 사람도 많지만 비박 김무성의 ‘옥새 나르샤’가 꼴 보기 싫어 등 돌린 사람도 많다. 진단이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올바른 처방이 나온다.
엉뚱한 얘기 같지만 수지는 왜 섹시하지 않을까. 현아는, 설현은 섹시한데 왜 수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섹시하지 않을까. 질문이 잘못됐다. 수지는 섹시하지 않아도 아름답다. 수지의 아름다움은 섹시한 데 있지 않고 우아하거나 다른 데 있다. 보수란 그런 것이다. 굳이 섹시해지려고 할 필요가 없다. 수지는 섹시해 보이려고 노력할수록 더 어색할 뿐이다. 협치니, 연정이니 하는 말로 겉멋을 부리지 않아도 보수는 아름답다. 그런 보수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보수의 혁신이다.
섹시한 보수를 원하는 의원들이 있다. 유복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젊은 시절을 보내고 그 덕에 의원까지 됐다. 뼛속 깊이 보수적이면서도 보수적인 부모에 대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갖고 있고, 당을 뛰쳐나가지도 못하면서 꼰대로 보이기는 싫은 쇄신파들이 대개 그런 부류다. 그러나 보수의 가치는 시대의 유행을 좇지 않고 때로 역풍을 맞으면서도 지혜로운 원칙을 지키는 데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