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활 논설위원
정권마다 반복되는 한국病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NATO 공화국’이란 말이 유행했다. 말만 있고 행동은 없는 ‘No Action Talk Only’의 약칭이다.
당시 청와대는 “참여정부는 (청사진을 먼저 만든 뒤 실천하는) 로드맵 퍼스트, 액션 레이터 정부다. 로드맵과 매뉴얼의 개혁 프로그램이 250개나 된다”라고 반박했지만 시중의 반응은 차가웠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2005년 한 특강에서 이렇게 충고했다. “정부는 한국의 보편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을 정책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지부터 분명히 밝히라. 말만 있는 NATO, 로드맵만 있는 NARO(No Action Roadmap Only), 계획만 있는 NAPO(No Action Plan Only) 같은 말이 나오지 않게 하라.”
사회당 정권인 프랑스에서도 노동시장 유연화 움직임이 한창인데 한국 노동계와 정치권의 ‘자칭 진보’는 꿈쩍도 않고 저항한다. 새로운 투자와 일자리를 만들어낼 서비스산업 규제 혁파, 농업 분야의 기업화와 시장화도 말만 무성하고 결과는 초라하다.
강만수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저서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에서 “미국 같은 선진국에도 임기 말 레임덕 현상이 있는데 우리는 말할 필요가 없다”며 경제에 임기가 없다는 것은 환상이라고 했다. ‘수도(首都) 권력’에 이어 입법 권력까지 야당에 넘어간 정치구도에서 임기 말 박근혜 정부가 눈에 띄는 개혁 성과를 낼 것으로 나는 기대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조금이라도 전진하는 쪽으로 기존 정책의 결과물을 내놓고 위기관리에만 성공해도 다행일 것이다.
권한 커진 巨野를 주목한다
규제개혁과 노동개혁의 발목을 잡아온 야당들이 시침 뚝 떼고 정부만 비난하는 데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다. 다만 그 대안이 대기업을 옥죄고 때려잡으면 나머지 국민이 잘살 수 있다는 식의 접근이라면 한국병(病)에 시달리는 경제를 더 질곡으로 몰아넣을 위험성이 농후하다. 권한과 책임이 커진 거야(巨野)가 시장친화적 개혁을 계속 가로막거나, 나아가 성장동력을 더 추락시킬 법안을 쏟아낸다면 내년 대선에서 집권하더라도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