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불안에 경제활동 올스톱
남미 좌파 진영의 중심이던 산유국 베네수엘라가 길거리의 개와 고양이, 심지어 비둘기까지 잡아먹을 정도로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저유가에다 좌파 정권의 무능한 정국 운영으로 생필품 수입이 거의 중단됐기 때문이다.
분노한 시민들과 야권은 ‘경제 파탄’ 책임을 물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몰아내려 하고 있다. 하지만 마두로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 선포로 맞서면서 정치 경제적인 혼란 상황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연일 야당 주도의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가 계속되면서 베네수엘라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돼 가고 있다.
미국 USA투데이는 18일(현지 시간) 현지 르포 기사를 통해 베네수엘라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다고 전했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속한 차카오 시의 라몬 무차초 시장은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시민들이 배를 채우기 위해 광장에서 개와 고양이를 사냥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글을 올렸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거리의 개와 고양이, 비둘기 등을 잡아먹는 것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라는 것이다.
식료품이 진열대에서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됐다. USA투데이 기자는 카라카스에서 남서쪽으로 88km 떨어진 빅토리아 시의 한 식료품점 앞에서 길게 줄 서 있는 300여 명의 시민들을 만났다. 옥수수나 쌀이 들어올 수 있다는 기대감에 무작정 기다리는 줄이었다. 빅토리아 시에서는 1주일 전부터 밀가루 공급이 끊겨 빵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전국 평균으로도 식료품 재고는 보름 분량뿐이다.
의약품 부족이 심각해 눈앞에서 어린 자식이 서서히 죽어 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만 봐야 하는 부모의 고통도 계속되고 있다. 농장 노동자인 루이스 아빌라 씨(42)는 “네 살배기 딸이 암에 걸렸는데 아무런 치료를 못 하고 있다”며 “마두로가 이 나라를 파괴하고 있다”고 절규했다.
가뭄으로 수력발전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의 전력 사정까지 급격히 나빠져 생활고를 부채질하고 있다. 쇼핑몰은 물론이고 병원까지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전기를 아끼기 위해 공무원들은 1주일에 이틀만 출근하는 형편이다.
국민들의 정권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실직한 로베르토 산체스 씨(36)는 “우리에겐 먹을 음식이 없고 전기는 하루 4시간씩 끊기면서 범죄율이 치솟고 있다”며 “베네수엘라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말했다.
분노한 시민들은 마두로 대통령의 16일 국가비상사태 포고령에 반발해 이번 주 거의 매일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18일에도 수천 명의 시위대가 수도 카라카스에서 국민소환 투표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던 도중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베네수엘라 야당은 현재 185만여 명이 서명한 국민투표 청원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상태다. 전체 유권자의 20%인 400만 명 이상이 청원에 서명해야 국민소환 투표가 진행된다. 국민소환 투표가 실시되더라도 마두로 대통령이 2013년 대선에서 얻은 760만 표 이상의 거부표가 나와야 마두로 대통령은 물러나게 된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