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광 ‘마녀 프레임’
근대와 마녀사냥의 조합은 어떠한 연고에서 비롯됐을까. 마녀사냥의 근저에는 기술의 발달이 있다. 바로 인쇄기술의 탄생(1439년)을 가리킨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과 인쇄기술이 만나 종교개혁이 탄생한 것처럼, 하인리히 크라머 등이 쓴 ‘마녀의 망치’(1487년)가 인쇄혁명의 도움으로 마녀사냥을 확산시켰다. 우리가 아는 마녀의 이미지는 바로 이 책에서 기인했다. 인쇄기술이라는 당시로선 최신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려서 유럽인들은 균질한 인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마녀 사냥을 위한 지적 기반이 형성됐다는 뜻이다.
인쇄매체는 대중이 특정한 인식을 자발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했다. 대중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방식과 달리 대중의 공모를 전제한다. 당시 중세에서 근대로의 급격한 사회 변동에 따라 희생양이 필요했다. 오늘날에도 이 같은 상황은 재현된다. 문화연구자 이택광 경희대 교수의 ‘마녀 프레임’(사진)은 이 점에 착안해 우리 사회를 조명한다.
근대 유럽처럼 한국도 희생양을 찾고 있다. 그때와 동일하게 급격한 사회 변동을 거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프레임을 형성하는 주요 매체가 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여기저기에서 확인되지 않은 마녀에 대한 소문으로 가득하다. 주로 성소수자나 여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여자들이 자기를 무시한다는 이유로 강남역에서 묻지 마 살인을 저지른 30대 남성의 뉴스를 들었다. 나보다 약한 자를 희생시키는 것이야말로 생존이 과업이 된 사회를 보여주는 징후 아닐까.
이원석 문화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