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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이 책!]희생양 찾아 약자를 괴롭히는 사회

입력 | 2016-05-20 03:00:00

이택광 ‘마녀 프레임’




많은 이들이 마녀사냥이 중세에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14세기에서 17세기에 주로 이루어졌고, 15세기부터 급속히 확산됐다. 미몽의 어두움으로 둘러싸인 중세가 아니라 계몽의 광채가 비친 근대에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마녀사냥은 종교개혁이 시작된 가운데 발생했다.

근대와 마녀사냥의 조합은 어떠한 연고에서 비롯됐을까. 마녀사냥의 근저에는 기술의 발달이 있다. 바로 인쇄기술의 탄생(1439년)을 가리킨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과 인쇄기술이 만나 종교개혁이 탄생한 것처럼, 하인리히 크라머 등이 쓴 ‘마녀의 망치’(1487년)가 인쇄혁명의 도움으로 마녀사냥을 확산시켰다. 우리가 아는 마녀의 이미지는 바로 이 책에서 기인했다. 인쇄기술이라는 당시로선 최신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려서 유럽인들은 균질한 인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마녀 사냥을 위한 지적 기반이 형성됐다는 뜻이다.

인쇄매체는 대중이 특정한 인식을 자발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했다. 대중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방식과 달리 대중의 공모를 전제한다. 당시 중세에서 근대로의 급격한 사회 변동에 따라 희생양이 필요했다. 오늘날에도 이 같은 상황은 재현된다. 문화연구자 이택광 경희대 교수의 ‘마녀 프레임’(사진)은 이 점에 착안해 우리 사회를 조명한다.

책의 초점은 마녀가 아니라 프레임이다. 마녀는 이미 사라졌지만, 프레임은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의 많은 인식과 선택이 합리적 논리가 아닌 인식의 틀(프레임)에 따른 것이다. 가령 임대주택에 사는 아이들을 따돌리는 말인 ‘휴거(휴먼시아 거지)’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은 요새 아이들이 유독 괴물이라서가 아니다.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각자 자기보다 약한 자를 마녀로 지목해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유럽처럼 한국도 희생양을 찾고 있다. 그때와 동일하게 급격한 사회 변동을 거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프레임을 형성하는 주요 매체가 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여기저기에서 확인되지 않은 마녀에 대한 소문으로 가득하다. 주로 성소수자나 여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여자들이 자기를 무시한다는 이유로 강남역에서 묻지 마 살인을 저지른 30대 남성의 뉴스를 들었다. 나보다 약한 자를 희생시키는 것이야말로 생존이 과업이 된 사회를 보여주는 징후 아닐까.
 
이원석 문화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