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의 총선 보도
《 ‘오만하면 심판받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 총선이었다. 총선 결과 출범한 3당 체제는 정치 지형에 적지 않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총선 관련 보도를 점검해 보고, 개선할 점을 찾기 위해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16일 ‘동아일보의 총선 보도’를 주제로 토론했다. 》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16일 본사 회의실에서 ‘동아일보의 총선 보도’를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유종헌 미디어연구소장, 강무성 조화순 위원, 이진강 위원장, 신용묵 안민호 박성원 위원, 정용관 정치부장.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정용관 부장=여야를 막론하고 벌어진 파행적 공천 과정에 대한 비판 기사를 많이 썼습니다. 또 ‘불량 후보 감별법’ 같은 기획도 실었습니다. 하지만 총선의 가장 큰 관심은 역시 누가 당선되느냐입니다. ‘판세가 누구에게 유리하다’라고 댈 수 있는 근거는 사실상 없기 때문에 기댈 방법은 여론조사밖에 없는 것도 현실입니다. 여론조사와는 다른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오히려 유권자를 더 헷갈리게 하지 않았나 반성합니다. 하지만 상대 텃밭에서 당선된 이정현 정운천 김부겸 김영춘, 네 명의 당선자를 모아 좌담회를 한 것은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기획이었다고 자부합니다.
조화순 위원=앞으로 여론조사의 문제점을 보완할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잘못된 여론조사 보도가 민심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 보도가 그런 걸 견제하고자 하는 대중의 심리를 강화한 측면도 있었겠지요.
신용묵 위원=동아일보 창간 96주년 여론조사는 독자의 정보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고 차별성도 있었습니다. 4월 1일자 여론조사를 보면 44%의 응답자들이 투표할 때 국회의원의 자질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정책 및 공약이 중요하다고 꼽은 사람도 29%였습니다. 결국 정책의 품질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어떤 후보가 좋은 후보인지 어느 정당의 정책 품질이 좋은가에 대한 심층 기사를 기다렸지만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위원장=지난 독자위원회 때 좋은 후보의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3월 28일자에 ‘입만 열면 박근혜 노무현 들먹여… 그런 후보는 맹탕’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후보가 불량 후보’라는 기사가 실린 데 이어 ‘이런 후보가 좋은 후보’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안민호 위원=동아일보를 3월 1일자부터 쭉 살펴보니 선거 당일까지 여당에 불리한 기사가 야당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어떤 날은 1면부터 사설까지 여당을 도저히 찍을 마음이 생기지 않게 많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지면에 실린 기사의 양만 보더라도 여당이 질 거라는 게 어느 정도는 예측이 됐던 것 같은데요.
안 위원=3월 19일자 1면은 ‘막장 공천 이런 여당 2년 더 봐야 하나’가 헤드라인이었고, 17일자엔 ‘총선 28일 앞두고 박 대통령 이번엔 부산 찾아’라는 제목이 1면에 나오는데, 이례적으로 굉장히 강한 톤이라고 느꼈습니다.
강무성 위원=3월 말부터 선거일 직전까지 1면 사진을 살펴보니 정치 관련 사진이 서너 번 쓰였는데 모두 새누리당 관련이었어요. 하루하루 신문을 볼 땐 지나쳤는데, 모아놓고 살펴보니 균형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반해 총선 다음 날 선거 결과를 보여준 1면 그래픽은 균형감 있었습니다. 각 지역구 하나하나에 동등한 가치 부여를 해서 벌집처럼 구성한 도표는 공정하게 처리하려는 노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박 위원=사진 얘기가 나와서 말씀드리면, 편집국에서는 매일 1면에 어떤 사진을 쓸까를 놓고 많은 고민을 합니다. 그날의 이슈와 뉴스 가치를 따라가다 보니 새누리당의 막장 공천이 더불어민주당에 비해 더 부각됐습니다. 연 단위, 월 단위로 균형에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지만, 주요 현안에 몰리다 보면 그런 분산의 묘를 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조 위원=결과적으로 보면 여야를 같은 분량으로 보도했다고 보긴 어렵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신문이 개별 이슈 중심이 아니라 좀 더 큰 그림을 그려주길 바랍니다. 아무래도 이슈 중심으로 가다 보면 때리기식 보도를 해야 하고, 작은 사안에 머물러 있게 되고, 큰 그림을 못 보게 되니까요.
신 위원=정치 기사에 있어서 언론이 좀 더 존재감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언론의 존재감이 컸다면 여야도 공천 파동을 그 지경까지 몰고 가진 못했을 거예요. 선거 과정에서 3당 대표 동행 르포와 각 당의 공약 점검 기사가 있었는데요. 각 정당마다 강조하는 면이 달라 콘텐츠의 일관성이 약하더라고요. 또 동아일보 주관으로 공약 점검표를 만들어 보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안 위원=전국 단위의 여론조사는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는 만큼,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령 4월 6일자에 교차투표에 관한 기사가 나오는데 총선 결과에서 보듯이 교차투표를 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을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의미 있는 결과를 파악했기 때문에 1면 톱기사가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중요하게 끌고 가도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강 위원=한 출입기자가 계속 같은 당만 출입하는 것 같은데, 같은 시각으로 비슷한 얘기를 반복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늘 그렇고 그런 기사가 계속되는…. 변화를 바란다면 출입처 조정을 유연하게 해 다양한 시각이 나올 수 있게 하면 좋겠습니다.
조 위원=건전한 비판이 아닌 ‘때리기’나 ‘흔들기’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정부가 실패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므로 건전한 비판을 많이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신 위원=선거 보도가 이전투구하는 모습만 보여주기보다는 휴머니즘이 있는, 감동이 녹아있는 스토리들도 소개해 주십시오.
정 부장=여론조사는 많은 폐해가 우려돼서 아주 제한적으로 보도를 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잘못된 분석이 되고 말아 따끔하게 지적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내년 대선은 전국 단위로 여론조사가 진행되고 관심도도 다른 만큼 개선 방안을 고민하겠습니다.
이 위원장=최근 정치권에서 ‘협치’라는 용어를 많이 쓰고 있는데 과연 개념이 정확한 용어인지, 올바르게 쓰고 있는지, 협치가 갖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지, 동아일보에서 잘 감시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논의가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리=김동원 기자 daviskim@donga.com
안나 인턴기자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