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논설위원
―50년이나 지배받았는데 일본을 친근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원주민 학살 같은 못된 짓도 했지만 발전소 도로 학교 병원을 지어 근대화의 기반을 닦아주었다. 역사에서 좋은 것 나쁜 것을 같이 알아야 하지만 미래를 위해 좋은 것을 위주로 살려나가야 한다.”
장제스는 한국의 상하이임시정부와 광복군을 지원했다. 윤봉길 의사 의거에 “중국인이 못 하는 일을 한국인이 했다”며 감동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승만 대통령 초청으로 방한했던 그는 진정한 친한파 중국 지도자였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공산주의가 확산되던 시절 중국을 마오쩌둥 정권에 내줬다.
―1992년 단교(斷交)를 해서 대만인들은 한국을 싫어하지 않나.
“그렇지 않다, 좋아한다. 심지어 중국 공산당과 수교하면서 우리와 단교한 사정도 이해한다. 문제는 과정이었다. 일본은 단교할 때 전직 총리가 찾아와 정중히 양해를 구했고 미국은 단교 직후 ‘대만관계법(TRA)’을 만들어 실질적 관계는 유지 강화하는 결정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무려 1년 전부터 양해를 구했다. 한국은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 점이 서운하다.”
오늘 대만에선 한국 민주당 격인 민진당 출신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취임한다. 대만은 물론 중화권 첫 여성 지도자여서 박근혜 대통령 취임 때만큼이나 언론의 관심이 높다. 외교부 사람들은 “한국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 나온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실제로 한국과 대만은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로운 정치 지도자를 택할 때마다 리더십 체제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참고해왔다.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9년 뒤인 96년 대만도 첫 총통 직선제가 실시됐고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2년 뒤인 2000년에는 50년 국민당 독재를 종식하고 민진당 천수이볜이 야당으로의 첫 정권 교체를 실현했다. 여성 대통령도 한국이 3년 앞선다.
우리는 지금 김정은의 북한을 상대하면서 일본 미국 중국이 각축하는 틈바구니에서 나름의 생존방식을 찾고자 고군분투 중이다. 박 대통령은 시진핑의 ‘북한 컨트롤’을 기대했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대만은 한국의 관심권에서 밀려나 있었다. 우리가 시진핑의 중국 본토만 쳐다볼 때 대만은 한류 열풍에 흠뻑 매료돼 한국을 바라보고 있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