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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눈앞의 신세계 가상현실 혁명

입력 | 2016-05-21 03:00:00

[가상현실 혁명]




19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마운틴뷰에서 열린 구글 개발자회의(I/O) 행사장. 이곳에서 기자는 노트북을 편 채 바닥에 앉아야 했다. 1000명을 수용하는 강연장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청중이 가득 찼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가 참석한 세션은 ‘데이드림 연구실―가상현실(VR·Virtual Reality) 시제품 강의’. 전날 구글은 올가을 새로 나올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에 고성능 VR 플랫폼 ‘데이드림’을 탑재하겠다고 발표해 화제가 됐다. 데이드림이 실제로 어떻게 쓰일지 보여준 이날 강연의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구글 VR팀의 로비 틸턴 엔지니어는 “우리의 일상이 VR 속에서 이뤄질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VR 속 스튜디오에서 친구들과 드럼 협주를 하고, VR 속 교실에서 선생님을 만나 중국어를 배우며 친구들과 대화하는 게 곧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구글 I/O 행사 둘째 날인 이날은 그야말로 ‘기-승-전-VR’였다.

구글뿐만이 아니다. 삼성전자, LG전자, 소니, 화웨이와 같은 크고 작은 하드웨어 기업들부터 페이스북 등 인터넷 기업, 스타트업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업이 VR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대체 VR가 뭐길래 글로벌 전자·정보기술(IT)업계가 이토록 들썩이는 걸까.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 것이고 우린 지금 어디쯤에 와 있는 걸까.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미지의 세계 VR를 낱낱이 들여다봤다.


▼ 바닷속에 들어간 듯… 물고기 달려드는 모습에 ‘깜짝’ ▼

VR기기 기자가 직접 써보니

18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편집국에서 임우선 기자(가운데)가 기어VR로 VR 콘텐츠를 체험하고 있다. 현재까지 VR 헤드셋 장비는 크기가 꽤 크고 눈을 완전히 가린다는 게 단점이다. 기자실이나 카페에서 쓰고 있다가는 자칫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주변 시선을 개의치 않는다면 어디에서든 상관없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016년은 가상현실(VR)의 원년이라고 불리는 해다. VR 기술 개발은 이전부터 시작됐지만 일반인이 사용할 수 있는 VR 제품들은 올해를 기점으로 대거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상용화된 VR 기기와 콘텐츠를 체험하며 VR의 미래를 그려봤다.

VR를 직접 경험하기 위해 가장 먼저 선택한 기기는 삼성전자의 ‘기어VR’ 헤드셋이었다. 스키 고글처럼 생긴 기어VR는 스마트폰과 연결해 쓰는 VR 기기다. 비슷한 가격(12만9800원)대 제품 중 가장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기기이기도 하다.



화면 속에 직접 들어가 있는 느낌


기어VR 전면에 갤럭시 S7 스마트폰을 꽂고 헤드셋을 쓰자 VR 구현에 필요한 관련 프로그램과 앱이 자동으로 스마트폰에 설치됐다. 이어 눈앞에 평면이 아닌 3차원(3D) 공간이 펼쳐지며 VR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이 나타났다.

VR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기대보다 다양했다. 일반인들이 360도 카메라로 촬영해 올린 VR 영상부터 게임, 영화 예고편, 짧은 길이의 다큐멘터리, 콘서트 현장 등 다양한 VR 영상과 사진 수백 편이 올라와 있었다. 관련 앱도 수백 개였다.

우선 유명 공연인 ‘태양의 서커스’를 재생해 봤다. 그러자 놀라운 경험이 시작됐다. 현실과 같은 입체감이 느껴지는 무대 위에 내가 서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영상은 ‘보는’ 것이었지만 VR 영상은 보는 게 아니라 내가 실제 그 공간 안에 ‘있는’ 느낌이 든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VR 영상은 전후좌우 위아래 등 360도 모두를 찍는 전용 카메라로 촬영된다. 그 덕분에 기어VR를 쓰고 제자리에서 한 바퀴 뱅 돌아보니 나를 둘러싼 공연장 전체가 다 보였다.

화질은 실제 눈으로 보는 것보다 못하지만 카메라가 무대 위에 설치된 덕에 배우들과의 거리는 실제 공연장 1등석과 비할 수 없이 가까웠다. 아주 매력적이었다. 양감(量感)이 느껴지는 화면 속에서 공연자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면 기자의 고개도 저절로 따라 올라갔다. ‘VR라는 게 대단하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화질만 좀 더 개선된다면 공연이든 영화든 VR로 보게 될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오르는 것도, 몰디브의 바닷속에 들어가는 것도 안방에서 가능해질 것이다. 이미 기어VR 플랫폼에는 남극의 설원 등 일반인들이 쉽게 갈 수 없는 대자연의 풍경을 담은 VR 영상이 꽤 많이 올라와 있었다.



공연도, 여행도, 회의도 안방에서


캐나다 뮤지션 패트릭 왓슨이 자신의 작업실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VR 영상도 흡인력이 컸다. VR 카메라는 왓슨의 피아노 바로 앞에서 그의 공간을 찍고 있었는데 마치 음악가의 내밀한 작업공간을 몰래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상의 원근감이 좋아 그가 담배를 피우자 진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묘한 느낌에 뒤를 돌아봤더니 내 발 밑에 왓슨의 개가 엎드려 있어 깜짝 놀랐다. 케이팝 콘텐츠를 VR로 만들면 전 세계에 엄청나게 팔리겠구나 싶었다.

디스커버리채널이 제공하는 바닷속 VR 영상도 실감났다. 실제 바닷속에서 달려드는 물고기들을 보는 듯해 움찔거렸다. 비록 물의 촉감과 냄새를 느낄 수는 없지만 시각적으로만 따지면 직접 스쿠버다이빙을 했을 때와 80% 정도는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정도의 현실감이라면 대학원 강의도 굳이 학교까지 가 들을 필요가 없고 대면 회의를 위해 해외 출장을 갈 필요도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기러기 아빠’들도 VR를 쓰면 좋을 것 같았다. 비록 가족을 직접 안을 수는 없지만 가족들이 있는 집 안에 VR 카메라를 설치하면 적어도 VR 기기를 착용했을 때만큼은 자신이 그 공간에 함께 있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미 시장에는 일반인들을 위한 40만 원대 전후의 VR 촬영용 360도 카메라가 여럿 나와 있다. 지난해 3월부터 유튜브 등에도 VR 영상 전용 코너가 생겨 360도 화면을 인터넷상에 공유하는 것도 매우 쉬워졌다.

이런 저런 VR 영상을 보다 문득 지금이 몇 시인가 싶었다. VR 헤드셋은 눈앞을 완전히 가리는 형태이기 때문에 오래 쓰다 보면 시간감각도 공간감각도 잃게 된다. 맙소사. 점심 약속 시간이 지나 있었다.



성인물 신세계 ‘VR 애인’ 시대 성큼

헐레벌떡 점심을 먹고 돌아와 다시 헤드셋을 썼다. 이번엔 VR시장의 성패를 쥐고 있다는 ‘성인물’을 봐야 할 차례다. VR업계가 성인물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만큼 VR시장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빠르게 확산시킬 기폭제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 1980년대 비디오테이프 표준이 정해질 때도 성인영화업계가 선호한 VHS 방식이 업계의 승자가 된 바 있다.

성인물을 VR로 보는 데에는 상당한 ‘공부’가 필요했다. 성인물은 공식 VR플랫폼에서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P2P 사이트 등 별도의 루트를 통해 파일을 구하고 이를 다시 스마트폰에 저장해야 했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파일을 헤드셋상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이를 구동하기 위한 별도 앱을 설치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인터넷상에는 이 같은 고생을 불사하고 VR로 성인물 보기에 성공한 이들의 후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VR 정보 공유 전문 사이트도 벌써 여럿 생겨났는데, 역시나 성인물에 대한 관심이 가장 뜨거웠다.

친절한 후기들을 참고해 영상을 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였다. 매우 생생하고 현실감 있었으며, 마치 상대가 바로 내 눈앞에 진짜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왜 전문가들이 10년 안에 ‘VR 포르노 시장’이 1조 원 규모로 클 것이라고 장담하는지 알 듯했다. 머지않아 ‘VR 애인’, ‘VR 섹스’란 단어도 흔해질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이것 참 큰일이다’ 싶었다. 어른들도 그럴진대 하물며 아이들은 얼마나 몰입감과 중독성을 느낄까. 부모들이 아이들과 싸워야만 할 엄청난 물건이 또 하나 나온 셈이다.



VR 게임시장 폭발 성장, 과몰입은 우려

본보 신무경 기자가 서울 강남구 선릉로에 있는 가상현실 콘텐츠 개발업체 스코넥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게임용 VR헤드셋과 컨트롤러를 체험해보고 있다. 스코넥엔터네인먼트 제공

VR시장의 또 다른 거물은 게임이다. 이미 시장에는 수백 개의 VR 전용 게임이 나와 있다. 게임 체험은 서울 강남에 있는 VR 게임 개발사 스코넥엔터테인먼트에서 진행했다. 이 회사에는 소니 플레이스테이션(PS) VR, 오큘러스 리프트, HTC 바이브 등 이미 출시됐거나 출시를 앞두고 있는 다양한 VR 기기들이 구비돼 있다. 기어VR와 달리 고사양 PC나 게임기와 연결해 쓰는 방식이고, 양손에 드는 조종기(패드)와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가 더해져 있다. 이 때문에 이들 기기의 가격은 최소 100만 원 이상이지만 성능은 압도적이었다.

먼저 아직 상용화 전으로 개발자용 제품만 나온 소니 PS VR를 써 봤다. 스코넥엔터테인먼트가 개발한 슈팅 게임 ‘모탈블리츠’를 체험했는데 손에 든 조종기를 들어올리자 화면 속에 내 손이 나타났다. 이 손으로 총과 폭탄을 집어 들면 적을 공격할 수 있고 센서 안쪽에서 몸을 움직이면 은폐물 뒤에 숨어 적들의 공격을 피할 수도 있었다. 박진감이 넘쳤다. 어지러움도 없었다.

오큘러스 리프트로는 ‘럭키스테일’이란 게임을 플레이했다. 역시나 그래픽의 현실감이 과거 TV에 연결해 쓰던 콘솔 게임기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 취재 전 어지러울 수 있다는 경고를 들었지만 실제로는 어지러움은 많이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재밌어서 그저 ‘조금 더 게임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게임업계로서는 분명 신기원이 열린 셈이지만 VR 기술과 콘텐츠가 더 정교하게 발전하면 폭력적·선정적 게임은 문제가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게임을 VR 속에서 오랜 시간 플레이하면 게임을 끝낸 뒤에도 현실과 구분하기 힘들 수 있다.

실제 미 육군은 최근 지은 VR 돔 시설에 VR 전쟁 훈련을 도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VR를 통해 실제 장병들의 전투 능력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MLB)도 VR를 활용한 타격 연습을 도입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마운틴뷰=신무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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