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개위 “기업 부담”… 정부, 사후보고로 완화… ‘카펫 세척제→살균제’ 가습기 사태 재연 우려
생활용품에 들어가는 유해물질의 용도를 바꾸려면 제조·수입 전 반드시 위해성 평가 자료 등을 제출하도록 한 관련법 조항이 3년 전 삭제된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업계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는 이유였다. 카펫 세척제로 쓰이던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해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낳은 점을 감안하면, 무분별한 용도변경을 제한할 핵심 조항이 업계의 논리에 밀려 약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환경부와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에 따르면 2012년 8월 7일 정부가 규개위에 제출한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 초안에는 등록대상 화학물질과 관련해 △제조·수입량이 크게 늘거나 △기존과 다른 용도로 쓰거나 △노출됐을 때 사람이 겪는 피해의 정도가 높아지면 해당 물질과 관련된 평가 자료를 제출해 ‘변경등록’을 하지 않으면 해당 제품을 아예 제조·수입하지 못하도록 명시돼 있었다.
하지만 같은 달 16일 규개위 행정분과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위원들은 “(해당 조항이) 업계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며 삭제를 권고하고 “제도가 관련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업계가 제출한 의견을 충분히 고려하라”고 주문했다. 정부는 이 권고를 받아들였고, 지난해 1월 시행된 화평법에는 ‘사전 변경등록’ 조항이 사라지고 변경사항을 발생 1∼6개월 내에 ‘사후 보고’하는 것으로 완화됐다.
환경부 관계자는 “용도변경 등록 의무 위반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중대 사항이므로 이를 어기는 업체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본다”며 “신규 화학물질에 대한 조사를 마치는 대로 변경 등록 실태도 파악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