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침몰할지 모르는 배 위에서… 기껏 테이블보 색깔 바꾸라고 판을 뒤엎는 친박 완장들… 대통령이 “친박 만든 적 없다”면 유승민보다 더 해당 행위하는 완장들 단속하고, 모두 몰수해야 대통령이 친박 전횡 못하도록, ‘악마처럼 견제’하는 일이 대통령과 친박이 모두 사는 길
심규선 대기자
질 나쁜 싸움의 맨 앞에 친박이 있다. 그들은 완장을 차고 있다. 본인들은 안 찼다고 하지만 친박끼리는 멀리서도 귀신같이 알아본다.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정직한 어린아이 눈에는 안 보이고, 아부하는 어른들 눈에만 잘 보이는 ‘투명 옷’과 꼭 닮았다.
그러나 완장을 차고 싸워 봤자다. 성난 파도에는 눈이 없다. 완장을 알아보지 못한다. 완장을 찼든 안 찼든, 빨리 조종실로 달려가 배의 진로를 바꿔야 목숨이나마 부지한다. 타이타닉호가 빙산의 존재를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지만, 새누리당은 친절한 국민으로부터 여러 차례 경고를 받지 않았는가.
첫째, 시간을 놓치지 말라. 한참 늦었는데도 게으름을 부린다. 둘째, 거짓말하지 말라. 뭘 그리 잘못했느냐며 사과조차 안 한다. 셋째, 본질에 충실하라. 당의 개혁이나 정권 재창출은 뒷전이고 당권에만 골몰한다. 넷째, 제3자의 입장에서 판단하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남에게까지 강요한다. 다섯째, 도와줄 사람은 없다고 가정하라. 패거리를 몰고 다니며 세 과시를 한다. 여섯째, 기대 이상의 것을 제시하라. 긍정적인 것은 늘 기대 이하이고, 부정적인 것만 늘 기대 이상이다. 일곱째,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라. 장밋빛 반전을 꿈꾸며 눈앞의 호의호식만 생각한다. 여덟째, 비판적 의견도 허용하라. 짐 싸갖고 나가라고 한다. 아홉째, 꺼진 불도 다시 보라. 불이 난 적이 없다고 생떼를 쓴다. 열째, 변화의 결과를 증명하라. 변한 것이 없으니 증명할 것도 없다.
어느 하나 칭찬해줄 구석이 없다. 정진석 원내대표의 선출은 그나마 당의 위기의식을 반영한 적절한 선택이었다. 그를 선택한 것은 그가 할 선택도 지지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친박은 정상을 비정상으로 뒤집었다. 예상이 번번이 빗나가니 친박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알기를 포기하면 실망과 미움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대통령이 친박 완장을 몰수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지난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분명 “친박을 만든 적이 없다”고 했다. 대통령이 주지도 않는 완장을 차고, 대통령이 그렇게 미워하는 유승민 의원보다 당에 더 해악을 끼치고 있는 그들을 방치할 이유가 없다. 과감하게 개입해도 된다. 국민은 박수를 칠 것이다. 청와대는 당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아무도 믿지 않는 말은 그만 하자.
소방방재청장을 지낸 박연수 고려대 그린스쿨대학원 교수는 며칠 전 ‘재해와 미래교육’이라는 심포지엄에서 세월호 사고의 원인을 언급하며 국가재난안전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컨트롤타워는 새롭지 않은데, 컨트롤타워가 평상시에는 ‘악마의 견제(Devil′s Check)’를 해야 한다는 말은 귀에 쏙 들어왔다. ‘악마의 견제’란 관련 부처들이 역할과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사고가 없을 때도 악독할 정도로 체크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체크만 해서도 안 되고 반드시 개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새누리당과 거대한 빙산 사이가 그리 멀지 않다. 큰 배는 진로를 바꾸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대통령과 친박그룹은 배의 진로를 틀어야 한다. 제발, 빙산 보고 비키라는 말은 하지 말기를. 그런 허망한 꿈도 꾸지 말기를. 저 빙산은 그냥 빙산이 아니다. 아주 싸늘해진 국민이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