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미국 책임론은 북한이 일찌감치 제기했다. 김일성은 1980년 10월 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보고를 통해 공식 언급했다. “광주의 애국적 봉기자들에 대한 야수적 살육 만행을 지휘한 것도 미국이며 남조선의 민주 인사들을 가혹하게 탄압하도록 부추긴 것도 미국이며, 남조선에서 군사파쇼 독재정권을 조작하고 인간 백정을 그 우두머리 자리에 올려 앉힌 조종자도 바로 미국이다.” 김일성이 미국을 “학살 만행의 배후조종자”라고 직접 규정한 것은 당시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김일성은 미국이 “치 떨리는 유혈 참극을 빚어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규탄했지만 속마음은 따로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우리는 조선과 미국 사이의 대화를 실현하고 평화 협정을 체결할 데 대하여 미국에 이미 여러 차례 제의했다”며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바꿀 데 대한 문제를 가지고 협상할 것을 미국에 다시 한번 제의한다”고 톤을 싹 바꿨다. 그런 제의가 “미국 인민들의 이익과 염원에도 맞는 것”이라는 설탕발림까지 했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