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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한기흥]광주, 미국, 김일성

입력 | 2016-05-23 03:00:00


1985년 5월 23일 서울 5개 대학 학생 73명이 을지로 미국문화원을 점거해 ‘광주학살 책임지고 미국은 공개 사죄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사흘간 농성을 벌였다. 5·18민주화운동에 미국 책임이 있다는 의혹이 당시 운동권엔 팽배했지만 서울 도심에서 미국 책임론을 외친 것은 처음이었다. 학생들은 서울에서 열리는 남북적십자회담에 영향을 주지 않겠다며 농성을 풀었으나 이현재 서울대 총장, 김석휘 법무부 장관의 경질 등 여파가 컸다.

▷5·18민주화운동 미국 책임론은 북한이 일찌감치 제기했다. 김일성은 1980년 10월 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보고를 통해 공식 언급했다. “광주의 애국적 봉기자들에 대한 야수적 살육 만행을 지휘한 것도 미국이며 남조선의 민주 인사들을 가혹하게 탄압하도록 부추긴 것도 미국이며, 남조선에서 군사파쇼 독재정권을 조작하고 인간 백정을 그 우두머리 자리에 올려 앉힌 조종자도 바로 미국이다.” 김일성이 미국을 “학살 만행의 배후조종자”라고 직접 규정한 것은 당시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김일성은 미국이 “치 떨리는 유혈 참극을 빚어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규탄했지만 속마음은 따로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우리는 조선과 미국 사이의 대화를 실현하고 평화 협정을 체결할 데 대하여 미국에 이미 여러 차례 제의했다”며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바꿀 데 대한 문제를 가지고 협상할 것을 미국에 다시 한번 제의한다”고 톤을 싹 바꿨다. 그런 제의가 “미국 인민들의 이익과 염원에도 맞는 것”이라는 설탕발림까지 했다.

▷미국은 “광주에 투입된 어느 부대도 미국의 통제하에 있지 않았다”고 국회 광주특위의 질의에 답변하는 성명을 통해 1989년 6월 19일 공식 해명했다. 그래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운동권도 요즘은 무조건 반미를 주장하지 않지만 미국대사관 등의 경비는 여전히 삼엄하다. 김일성이 광주를 거론하며 미국을 비난하면서도 북-미 대화를 애걸한 것을 알았다면 운동권의 반미 기류가 바뀌었을까.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