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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도의 기적’이 롤모델… 한국 기술로 친환경 개발 첫삽

입력 | 2016-05-24 03:00:00

[한국형 ‘그린 원조’ 현장을 가다]<1>에티오피아에 쓰레기 재처리 기술-교통시스템 교육




짓다 만 건물들, 도심 곳곳에 방치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국제공항과 국제통화기금(IMF) 사무실 등이 들어선 중심가 볼레 지역. 도로에는 건널목이 부족하고 인근에는 공사가 중단된 건물들이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에티오피아는 도심 교통 혼란을 줄이고 미관을 개선하기 위해 서울의 친환경 도시 관리 및 교통 시스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아디스아바바=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 에티오피아 비쇼프투 시의 쓰레기 매립 시설 현장을 방문했을 때 기자는 코를 손으로 감싸 쥐어야만 했다. 시설 전역에서 심한 악취가 났다. 플라스틱, 비닐, 캔, 유리 등 다양한 쓰레기가 분류되지 않은 채 뒤섞여 있었다. 땅에 묻는 쓰레기에서 침출수를 뽑아내는 배수 시설은 훼손돼 땅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매립 시설을 관리하는 인력도 눈에 띄지 않았다. 새들만이 음식물 쓰레기나 도축된 뒤 버려진 소의 부산물을 먹으며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약 20만 명이 사는 비쇼프투 시 주변에는 9개의 아름다운 호수가 있고, 숲도 울창하다. 중앙정부와 시 정부는 관광산업 육성에 관심이 많다. 최근 수도 아디스아바바와 이어지는 고속도로 확장 공사를 진행 중이고 주변에는 산업단지도 만들 계획이다. 》

○ 관리 노하우와 인력은 없는 쓰레기 매립지


하지만 1200만 달러(약 142억8000만 원)를 들여 조성한 쓰레기 매립 시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관광 도시’로 성장하는 데 발목을 잡고 있다. 실제로 17일 오후 3시경(현지 시간) 찾은 비쇼프투의 쓰레기 매립 시설은 관광도시의 그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이곳에서 만난 케베데 곤파 비쇼프투 환경미화과장은 “쓰레기 매립 시설을 만드는 데만 골몰한 나머지 이를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며 “지금부터라도 시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세계은행을 통해 한국의 노하우를 전수받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을 방문한 세계은행 한국녹색성장기금(KGGTF·그린펀드) 팀은 비쇼프투 시 관계자들에게 1990년대까지 한국의 대표적인 환경오염 지역이던 서울 난지도 쓰레기매립장이 생태공원으로 변신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곤파 과장 등 현지 공무원들은 “한국의 난지도 생태공원은 에티오피아의 롤 모델”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린펀드팀은 한국이 2000년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를 설립해 쓰레기 재활용과 신재생에너지 전환 기술을 향상시킨 사례를 소상하게 설명했다. 또 1981년 하루 1.77kg이던 1인당 쓰레기 배출량이 2011년에는 0.95kg으로 줄어드는 등의 주민 의식 개혁 과정도 소개했다.

그린펀드 팀은 에티오피아 정부와 상의해 비쇼프투 시의 환경미화 관련 공무원들이 한국의 환경부, 서울시,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등을 방문해 쓰레기 처리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는 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로 했다.


○ 버스 중앙차로 등 반영 가능성 높아

세계은행을 통해 에티오피아에 전수되고 있는 한국의 녹색 성장 경험은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 발표될 예정인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장기 도시 개발 계획’에도 대거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들이 당연하게 이용하는 버스전용차로와 티머니(자동 교통요금 결제) 등이 이 나라에는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비전이자 솔루션’이기 때문이다.

아디스아바바는 310만여 명이 모여 살아 케냐의 나이로비와 함께 동아프리카의 대표 도시로 꼽힌다. 하지만 아디스아바바 도심 지역에도 신호등, 건널목, 인도 등이 체계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건물 주인이나 건설업체의 재무 상태 등을 꼼꼼히 검증하지 않고 건설 허가를 내줘 공사가 중단된 건물들이 흉물스럽게 서 있었다.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와크나 아베베 씨는 “아디스아바바에 다녀간 사람들은 모두 열악한 교통과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중단된 공사 현장에 치를 떤다”고 말했다.

세계은행은 한국이 △간선급행버스(BRT) △버스전용차로 △대형 버스 중심의 대중교통 체계 △대중교통 요금 통합 시스템 등을 도입한 과정과 이를 통해 교통난을 해소한 성과를 소개했다. 엘리슨 리(이은주) 세계은행 녹색성장기금팀장은 “한국은 이동통신 회사들과 협력해 교통량과 교통 이용 패턴을 분석하고 교통난 해소 정책에 구체적으로 반영한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 당국자들도 한국에서 시민들의 교통 이용 패턴을 정확하게 분석하기 위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같은 이동통신 회사들을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세계은행 발표를 듣던 이들은 “에티오피아도 도시 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데이터 마련 방법과 활용 방안을 더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마테오 바케레 아다스아바바 도시계획국장은 리 팀장 등에게 한국 연수 프로그램을 하루빨리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세계은행은 서울시와 서울시립대, SH공사, 한국교통연구원 등과 연계해 다양한 직급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로 했다. 그린펀드를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구체적인 개발 계획이 서면 세계은행이 정식 개발 원조나 차관을 공여해 개선 사업 실행에 나선다.


○ 과학기술 분야에도 불기 시작한 ‘한국 바람’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방문하는 에티오피아에서는 세계은행의 그린펀드 프로그램 외에도 다양한 한국 배우기 움직임이 한창이었다.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서 한국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석유 같은 천연자원이 없는 에티오피아는 제조업 중심의 경제 성장 전략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보다 교육열이 높다는 것도 한국형 성장 전략을 추구하기에 유리한 환경이다.

아베바 알레메이후 세계은행 에티오피아사무소 수석컨설턴트는 “에티오피아의 경제계와 과학기술계에서는 한국을 핵심 벤치마킹 대상 국가로 자주 거론한다”고 말했다. 중앙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설립해 국가 차원의 지역 개발 전략을 마련하고 서울 같은 대도시가 서울연구원 같은 자체적인 ‘싱크탱크’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도 현지에선 한국 따라하기의 매력적인 모델로 꼽힌다.

아디스아바바·비쇼프투=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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