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문화부 기자
한강의 소설은 지금도 대중적인 편은 아니지만 작가로서 첫발을 떼던 당시에도 유행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나 보다.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당시 대표)이 쓴 초판 해설은 “한강의 상상력은 한 세대 전의 세계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 거기서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감각적인 글쓰기가 유행했다고 들었다. 정치적으로는 장군 출신 대통령들이 물러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국민소득 1만 달러를 앞둔 경제는 야심만만하게 세계화를 외쳤으며, ‘서태지와 아이들’이 문화 대통령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아마 많은 이들이 한없이 가벼움을 만끽할 수 있었던, 건국 이래 유일한 시절일 것이다.
그때 한강은 한동안 진눈깨비에 ‘꽂혔던’ 것 같다. 여러 소설에서 이야기가 전환되는 마디마다 진눈깨비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표제작의 주인공 정선은 방에 날리는 먼지를 보며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는 여수의 진눈깨비를 떠올린다. ‘질주’에서 인규의 어머니는 진눈깨비가 어지럽게 흩날리던 날 수십 년 전 잃은 둘째 아들과 인규를 착각하는 치매 증상을 드러낸다. ‘어둠의 사육제’에서는 영진이 나중에 믿음을 저버릴 고향 언니에게 깊은 동정을 느낀다.
진눈깨비,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니고, 눈처럼 맞았다가는 금세 축축해져 기분이 나빠지는, 봄을 순식간에 우울한 겨울로 되돌리는 스산한 것. 다시 생각해 보면 한강이 ‘여수의…’를 쓰던 시절도 가벼운 시대가 아니었다. 잇따른 대형 참사는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고 민주주의 확대의 열망이 때로 좌절했다. ‘여수의…’ 주인공이 아홉 시 뉴스를 볼 때면 언제나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던 것처럼, 당시 20대에게는 진눈깨비의 이미지에 썩 어울리는 시대였을 거다.
창작은 흔히 산고에 비유된다. 아기는 자라지만, 작가들이 낳은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다. 오래전 작품을 읽는 작가의 기분은 어떨까. 여수까지 고속철도(KTX)가 개통된 지 오래지만 소설의 주인공들은 여전히 통일호를 타고, 공중전화를 걸었다가 3분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면 얼른 전화를 끊는다. ‘여수의…’ 첫 문장처럼, 여수 앞바다의 녹슨 철선들은 지금도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부짖어 대고 있을까.
조종엽 문화부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