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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시선/이명옥]미술계 관행과 조영남 씨의 이중성

입력 | 2016-05-24 03:00:00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한국미술관협회장

대작(代作)이 미술계 관행이라는 조영남 씨의 해명이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격렬한 비난이 쏟아지는 한편으로 현대미술에서 아이디어나 콘셉트만 제공하고 실행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있다며 일부 옹호하는 주장도 나왔다.

관행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려면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예술가 유형 중에 다음 두 가지를 살펴보자. 먼저 예술의 순수성과 독창성을 추구하는 창작자형 예술가다. 이들은 미술이 심오한 미적 경험을 제공하고 감동과 위안을 주는 신성한 창작 행위라고 믿는다.

창작자형 예술가는 대체로 붓, 물감 등의 전통적인 도구와 재료를 이용해 자신이 직접 창작한다. 대작은 예술에 대한 모독이다. 현대미술의 거장인 루치안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같은 그림을 또 한 번 그리는 거라네. 돈을 버는 데 이보다 힘든 일은 없어. 나는 매일 카지노에 있는 것처럼 8시간 동안 미친 듯 그림을 그리는 거야.”

다음은 내면세계를 독창적인 화풍으로 구현하기보다 기획력을 중시하는 연출가형 예술가다. 이들은 예술적 관습과 규범을 바꾸고, 예술의 경계를 해체하고, 자유롭게 창조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상업성에서도 자유롭다. 전통적인 창작 방식을 거부하고 공장형 스튜디오에서 작품을 대량생산 방식으로 상품처럼 만들어내기도 한다. 예를 들면 블루칩 작가인 영국의 데이미언 허스트는 대표작인 스폿 페인팅(Spot Paintings)을 선보인 전시장에서 “전시된 그림들 중 단 한 점도 직접 그리지 않았다”며 예술의 순수성과 독창성을 조롱하는 발언을 했다.

조 씨는 지금껏 자신의 이미지를 기획자형이 아니라 창작자형 예술가로 보이도록 포장했다. 그림을 직접 그렸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그렇게 믿도록 만들었다. 스스로를 가수와 화가를 합친 ‘화수(畵手)’로 불러달라고 했고, 화투그림이 독창적인 화풍이라고 홍보 마케팅 했다. 조 씨의 그림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도 아이디어나 콘셉트가 아니라 가수가 그림을 잘 그리는 재능과 실력을 가졌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많은 미술인과 대중의 공분을 산 이유는 대작 사실이 드러난 이후 보여준 조 씨의 이중성이었다. 취미로 그림을 그렸으면 좋았을 조 씨는 프로 예술가 행세를 하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이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고도 쉽게 부와 명성을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한 뼈아픈 대가이기도 하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한국미술관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