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평양에서 열린 제12회 전국조선옷전시회(패션쇼)에 참가한 북한 모델들이 1000여 명의 청중 앞에서 다양한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출처 아람판 홈페이지
주성하 기자
쇼핑 전에 먼저 한국 남성들의 여름 옷차림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창 나이의 총각 눈에 남자들만 보일 리가 있나.
한 시간 정도 ‘관찰’을 마친 뒤 나는 “음, 남남북녀(南男北女)란 말이 맞는 말이네”라고 결론 내렸다. 여성들의 키는 확실히 북한보다 컸지만 바람이 휙 불면 날아갈 정도로 마른 여성이 대다수고 뚱뚱한 여성도 북한보다 훨씬 많았다. 눈이 남한화가 된 지금은 그 마른 몸매가 날씬한 몸매로 보이긴 하지만….
“여긴 미인들만 모아놓은 동네인가.”
물론 지금은 강남역에 다시 간다면 “코 세웠네. 턱 깎았네” 하며 어림짐작으로 견적을 때릴 수 있는 정도까진 됐다고 생각한다.
남쪽에서 강연을 다니다 보면 “북한 여성들이 예쁩니까” 하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러면 나는 “아니요. 조선시대는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은 남남북녀가 아니라 남남남녀의 시대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대를 거치며 자란 북한 아가씨들은 영양 부족으로 평균 키가 작은 데다 땡볕 속에서 수시로 사회 동원을 나가다 보니 피부도 거칠 수밖에 없다.
그런 변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분야는 성형시장이다.
북한도 이제는 턱뼈 깎는 고난도의 수술을 제외하고는 웬만한 성형수술은 다 한다. 쌍꺼풀 수술이 본격적으로 유행한 것이 10년도 채 안 됐는데 이제는 코도 높이고 이마에 필러도 넣는다.
가격도 매우 싸다. 쌍꺼풀은 20달러 정도, 코를 높이는 것은 재질에 따라 30∼50달러에 불과하다. 쌍꺼풀은 은퇴한 의사들이 집에 간단한 수술 도구를 갖춰놓고 도처에서 한다. 코 역시 구강병원에서 할 때도 있고 개인 집에서 하기도 한다.
얼마 전 한 북한 아가씨와 이야기를 하다가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다. 요샌 산원(産院)에서 가슴 성형도 한다는 말을 듣고 놀라 “아니, 북한 남자들이 이젠 그런 것까지 따집니까” 했더니 “선생님, 가슴 큰 여자 싫어하는 남자도 있습니까”라고 당당하게 대꾸한다.
물론 수술의 종류가 다양화되는 것과는 별개로 의사들의 수준은 높지 않다. 재료도 중국에서 싼 것을 수입해 질을 보장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북한에선 “누가 사람이 붐비는 버스를 탔다가 코가 돌아갔다”는 식의 이야기가 자주 나돈다. 코가 돌아가도 손해배상은 상상할 수도 없다.
실력은 있지만 못하는 수술도 있다. 라식 수술이 대표적이다. 몇 년 전까진 평양 통일거리에 있는 안과병원에서 라식 수술을 했다. 2005년 국제라이온스협회가 기증한 병원이다. 한동안 미세각막절삭기라는 특수 수술칼이 없어 당사자가 직접 구입해 가야 했다. 그런데 이 병원의 첨단기계가 고장 난 뒤론 라식 수술을 할 곳이 없어졌다. 시력이 나쁜 여성들이 중국에 나와 제일 받고 싶어 하는 것이 라식 수술이다. 그런데 현지 가격이 1만5000위안(약 270만 원) 정도로 1년 넘게 벌어도 모으기 힘든 큰돈이다. 그래도 북한에서 안경 낀 여성은 너무 인기가 떨어져 외상으로라도 수술대에 오른다고 한다.
그나마 북에서 다이어트는 성형만큼 열풍이 불지는 않는다. 어차피 북에서 살면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 아직까진 살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미에 대한 욕망과 더불어 한국 드라마까지 광범위하게 퍼지다 보니 이젠 평양 젊은이들도 섹시하다느니, 에스라인이니 하는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고 한다.
몇 년 전 평양 사람이 나보고 ‘파이팅’ 하길래 놀랐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세상이 돼버렸다. 한류가 점점 흘러들어갈수록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애정 표현도 갈수록 과감해진다고 한다.
앞으론 평양에서 “처녀 동무 완전 섹시합니다. 에스라인 죽이네요” 하는 말을 듣게 되더라도 절대 놀랄 일이 아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