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비아 에토샤국립공원
해질 녘 에토샤 국립공원의 할랄리 캠프에 있는 워터홀(샘)의 풍경. 아기까지 동반한 코끼리 가족이 찾아와 물을 마시고 있다. 면적이 남한의 20%인 에토샤 국립공원에는 사자 표범 치타 코끼리 코뿔소 등 400종이 넘는 다양한 야생동물이 자연 상태에서 살고 있다.
인류(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 단세포에서 진화한 고등생물이 영장류로 발전했기 때문. 110만 년 전에 등장한 호모 에렉투스의 후손이자 현생 인류의 조상이 바로 호모 사피엔스다. 그래서 에토샤 팬을 찾는 길은 지구와 인류의 역사를 역추적하는 시간여행이다. 이 여행만큼은 야영 장비를 탑재한 트럭으로 캠핑을 하는, 즉 오버랜드 트러킹(Overland Trucking)이 제격이다.
하늘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후크. 남아프리카의 관문 요하네스버그 국제공항을 이륙한 지 두 시간 만에 안착했다. 캐빈을 나서 트랩 카에 오르는 순간. 투명한 파란 하늘에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늘’이라는 찬사, 조금도 틀리지 않다. 이 하늘을 촬영한 사진이 그걸 증명한다. 색감이 그리도 청징할 수가 없다. 조금 과장하면 나미비아에선 하늘만 보고 가도 좋다.
빈트후크는 인천공항을 떠나 근 하루 만에 도착했다. 고단한 장거리비행인 만큼 첫날은 느긋하게 쉰다. 그 밤의 저녁식사 장소는 시내명소 ‘조스 비어하우스’. 맥주와 게임미트(Game Meat)를 즐긴다. 이 야외식당은 유럽인이 아프리카를 탐험하던 19세기 시절의 분위기로 꾸몄다. 빈트후크는 같은 이름의 맥주로도 유명하다. 지난 세기 초 독일이 식민지를 개척할 당시에 세운 양조 회사의 제품이 ‘빈트후크(Windhoek)’여서다. 500년 전 바이에른의 한 왕이 제정한 ‘독일 맥주 순수법’에 따라 물과 보리, 홉으로만 만드는 정통 독일맥주다. 게임미트란 야생동물(Game)고기를 말한다. 쿠두와 오릭스, 얼룩말, 악어 등 농장주가 허가를 받고 잡은 동물 고기를 꼬치에 꽂아 구워 낸다.
이튿날 아침. 오버랜드 트럭(20인승)은 북쪽 에토샤 국립공원을 향해 출발했다. 이날 이동거리는 420km. 점심식사와 휴식을 위해 세 차례 정차하는데 트럭 스태프는 마을 슈퍼마켓에서 승객에게 만들어줄 음식 재료를 산다. 승객들은 자기가 마실 맥주와 음료수, 와인 등은 자기 돈으로 산다.
오버랜드 트러킹 여행자는 두 가지에 놀란다. 나미비아 등 아프리카 마을에 우리나라와 별 차이 없는 마트가 어디에나 있다는 것과 과일 고기 야채 등 먹을거리가 너무도 싸다는 사실에. 오렌지와 감귤, 사과는 20, 30개들이 한 자루에 2000원 내외, 돼지고기는 1kg에 5000원 정도. 와인도 3000, 4000원짜리면 괜찮다. 트럭 실내엔 아이스박스와 냉장고가 있어 먹거리는 언제나 신선하다.
푸른 하늘 은하수, 그리고 브라이
캠핑 첫날 저녁식사는 환상적이었다. 브라이(Braai)라는 아프리카식 쇠고기 바비큐도 좋았지만 밤하늘을 뒤덮은 뽀얀 은하수와 별들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걸 보면서 맥주와 와인을 곁들인 야외 바비큐 파티라니…. 그 자체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별에 취하다 보니 벌써 오후 아홉 시. 아프리카에서 이 시간은 도시의 자정이나 마찬가지다. 텐트 안의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지만 쉽게 잠들지 못한다. 아프리카 대지에 닿은 등을 타고 대륙의 원시적 박동이 전해오는 듯해서.
오버랜드 트러킹, 그 자체가 사파리
▲오버랜드 트러킹 캠프에서 점심식사.
셋째 날 오전, 그 길에서 끔찍한 광경을 목도했다. 머리와 가슴부분만 남은 얼룩말 사체. 간밤에 사자나 하이에나에게 당한 것이다. 야생 공원은 자연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오버랜드 트럭을 이용한 사파리 역시 자연의 일부가 된다. 트럭과 사람은 그 어떤 것도 해치지 않기에. 자연에선 사람만 딱 한 가지 규제를 받는다. 절대 차량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사자와 표범이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인데 자연생태계에선 인간이 가장 약한 존재여서다.
빅 파이브를 찾아라
일단 사파리가 시작되면 의자에 앉을 틈이 없다. 창문 밖에 수시로 야생동물이 출현해서다. 처음엔 기린 한 마리에도 환호한다.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새로운 동물을 기다린다. 긴 뿔의 오릭스와 쿠두는 덩치가 커 멀리서도 잘 보인다. 스프링복이나 임팔라 같은 작은 사슴은 무리로 등장해 눈길을 끈다. 에토샤 국립공원에서 가장 흔한 것은 여우 크기의 자칼.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인기만점 캐릭터 ‘품바’의 모델인 멧돼지는 가족단위로 다닌다.
사파리에선 모두가 ‘빅 파이브(Big Five)’를 기대한다. 아프리카 초원의 맹수 5종인 사자 코끼리 표범 버펄로 코뿔소를 말한다. 이번 취재에선 표범만 빼고 다 만났다. 사자는 어미와 새끼 두 마리를 길가 갈대밭 속에서, 코뿔소와 코끼리는 할랄리 캠프의 워터홀에서, 버펄로는 트럭으로 이동 중 초원에서 봤다. 같은 사자지만 에버랜드에서 보는 것과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자연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다. 그거야말로 에토샤 국립공원에서 즐기는 오버랜드 트러킹과 사파리의 매력이자 마력이 아닐지.
360도 지평선 세상, 에토샤 팬
▲서울 면적의 여덟 배나 되는 에토샤 팬. 어딜 둘러봐도 지평선뿐이다.
5월은 우기가 끝난 직후. 5cm쯤 고였던 빗물은 모두 증발해버리고 팬은 다시 황무지로 돌아간 상태였다. 그 팬에선 사방팔방으로 지평선밖에 보이지 않는다. 거기서 시인 이생진이 생각났다. 그는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서 성산포 바다의 수평선에 눈을 베였다고 했다. 만약 그가 여기에 선다면 이번에는 지평선 때문에 베인 눈을 다시 베였다고 읊을지도 모르겠다. 에토샤 팬의 진흙바닥은 하얗다. 그 실체는 수백만 년 동안 켜켜이 쌓인 소금기. 그 하얀 바닥의 지평선 저 너머에서는 바다가 어른거린다. 그러나 바다가 아니다. 신기루다. 에토샤 팬은 이렇듯 사람을 멋지게 홀린다.
쿠네네(나미비아)에서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베스트래블 트러킹: 이 루트 중 하이라이트 구간(나미브 사구사막, 에토샤 국립공원, 오카방고델타, 빅토리아 폭포)만 골라 현지 아카시아 오버랜드 트러킹사가 독일산 트럭을 이용해 진행 중. 한국인이 동승해 안내한다. 11일 일정으로 9월 11일 출발하는데 참가비는 370만 원. 베스트래블(www.bestravel-tour.co.kr) 02-397-6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