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연중기획/한국경제, 새 성장판 열어라/R&D 현장을 가다]<6> 한화케미칼 중앙연구소
▲연구 실험하며 현장 점검까지 대전 유성구 가정로 한화케미칼 중앙연구소에 설치된 염소화PVC(CPVC) 시험생산 설비에서 홍기원 주임연구원(오른쪽)과 진선정 수석연구원이 설비를 살펴보고 있다. 한화케미칼은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고부가가치 화학제품인 CPVC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했다. 한화케미칼 제공
진선정 한화케미칼 중앙연구소 수석연구원(49)은 2011년 회사 사업본부장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PVC는 건축자재와 생활용품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범용 화학제품. 한화케미칼은 국내 최초로 1966년부터 PVC를 생산해왔지만 범용 제품만으로는 장기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없었다. 고부가가치 화학제품 개발이 절실했다.
한화케미칼은 ‘염소화PVC(CPVC)’에 주목했다. CPVC는 PVC보다 염소 함량을 10%가량 높인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소방용 스프링클러 배관, 온수용 배관, 산업용 특수 배관 등을 제작하는 데 쓰인다. 쇠로 만든 배관은 시간이 지나면 녹슬지만 CPVC는 부식이 되지 않는다. 열과 압력에도 강하다. 무게가 가벼워서 시공하기 편하다는 장점도 있다.
○ CPVC를 국내 최초로 국산화
문제는 기술이었다. 과거 한화케미칼 연구진은 1996, 1999년 두 차례에 걸쳐 CPVC 개발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적이 있었다. 선진국 화학회사 4곳만 기술을 쥐고 있어 제조방법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도 없었다. 해외기업으로부터 기술을 사려고 한 적도 있지만 해당 기업이 CPVC 4000t 기준으로 기술 도입료 107억 원을 요구하면서 무산됐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한화케미칼은 어떻게든 자체 기술로 CPVC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CPVC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렸다. 연구소뿐 아니라 본사 사업부와 공장 소속 직원까지 총 7명이 TFT에 참여해 ‘삼각 체제’를 갖췄다. 이들은 기술 개발뿐 아니라 시장조사 등을 기반으로 상업화를 동시에 고민하며 매달 모여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연구진은 ‘맨땅에 헤딩하듯’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연구 도중 설비가 녹아버려 장비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됐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재료는 어떤 비율로 배합하고, 어떤 반응기(화학 반응을 위해 사용되는 기구)를 써야 하는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2013년 대전 유성구 가정로 한화케미칼 중앙연구소에 약 330m²(100평) 규모의 CPVC 시험생산 설비(파일럿 플랜트)가 설치됐다. 지난해 5월엔 기술개발이 완료됐다.
○ 울산공장을 고부가가치 제품 메카로
최근 방문한 한화케미칼 중앙연구소 CPVC 시험생산 설비에서는 하얀 가루 모양의 CPVC가 우수수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직원 4명은 상업생산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연구와 실험을 하며 현장점검을 병행하고 있었다. 한화케미칼은 현재 울산에 CPVC 연산 3만 t 라인을 짓고 있다. 올해 안에 준공해 내년 3월 상업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한화케미칼은 최근 CPVC뿐 아니라 다양한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하며 신사업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선 PVC의 접착성을 향상시킨 고부가가치 소재인 ‘ABR’를 개발했다. 독성을 없애 인체에 무해한 ‘친환경 가소제’도 내놓았다. 한화케미칼은 이런 제품을 바탕으로 울산공장을 국내의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화학제품의 메카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한화케미칼 중앙연구소 연구진은 총 210여 명. 한화케미칼은 올해 연구개발(R&D)에 462억 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해(399억 원)에 비해 13% 증가한 수치다.
김창범 한화케미칼 사장은 “한화케미칼 중앙연구소는 수준 높은 연구를 통해 CPVC 외에 추가적인 기능성 고분자 합성 분야, 촉매 및 신(新)공정 분야에 독자적인 원천기술 플랫폼을 구축해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이를 토대로 고부가 특화제품에도 자체 기술을 적용해 시장과 기술을 선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대전=이샘물 기자 ev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