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뒤 대통령 “관피아 척결”… 관피아 늘린 공직자윤리위원장 새누리당 혁신비대위원장으로… 비박 비대위 무산된 5월 17일 집권보수당 운명도 뒤집혀… 유럽은 ‘진보적 보수주의’로 친박은 대통령 만세로 간다
김순덕 논설실장
김기용의 고향이 제천이고, 4·13총선 때 그곳 새누리당 예비후보였던 걸 알고 나면 미담의 향기는 훅 날아간다. 그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로부터 SK텔레콤 기지국 설치 관련 자회사에 취업 승인을 받은 날이 꼭 2년 전 5월 30일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터진 뒤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며 “관피아라는 부끄러운 용어를 완전히 추방하겠다”고 다짐한 지 한 달 만에 새 관피아를 탄생시킨 공직자윤리위원장이 김희옥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다(이하 경칭 생략).
퇴직 공무원 취업 관련 법규에 어긋났다는 건 아니다. 지연(地緣) 학연(學緣) 의리 있는 사람끼리 회삿돈으로 고향 농산물 200만 원어치 사주는 게 별일 아닐지 모른다. 김희옥이 동국대 총장 시절 KCC의 동문 명예회장에게 학교 건물 신축을 맡기고(동국대 홈페이지에는 공개입찰 기록이 없다), 윤리위원장 재임 중인 작년 10월 KCC 자회사인 코리아오토글라스 사외이사를 맡은 것도 대수롭지 않은 게 분명하다.
원칙과 인품이 훌륭해 세상 변화와 민심에 어두운 건 더 위험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관피아에 대한 분노와 공직 혁신에 대한 요구가 들끓던 그 무렵 어떻게 공직자윤리위원장이 청와대 행정관으로 뇌물 먹고 직위해제된 공정거래위원회 과장의 로펌 취업을 승인해준단 말인가. 인사 자료에 없어 몰랐다는 건 신문도 안 본다는 얘기다. 명색이 장관급이면 사전에 조사할 건 조사해 보고 사표 반려 뒤 징계하도록 조치해야 옳지, 공무원연금 다 챙기고 억대 연봉까지 받게 해주는 게 말이 되는가.
개각설이 나올 때마다 김희옥이 총리 물망에 오른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새누리당을 환골탈태시키는 건 국민에게 잘 뵈지도 않는 총리 역할보다 중요하다. 관피아 척결이 어느 때보다 중요했던 세월호 직후에도 관피아를 그냥 내려보냈던 인품으로 새누리당을 개혁한다는 건 관피아가 웃을 소리다.
정진석 원내대표의 비대위원장 겸임과 김용태 혁신위원장 추인을 위한 상임전국위원회가 친박(친박근혜)의 힘에 무산된 ‘5·17쿠데타’로 새누리당의 운명은 바뀌었다. 1979년 12·12쿠데타로 서울의 봄이 사라진 것처럼 새누리당은 앞으로 대통령만 바라보며 수구보수의 길로 갈 것이다. 김희옥이 남들 다 아는 새누리당의 총선 패인에 대해 “말씀드리기 어렵다”면서도 비박(비박근혜) 중심의 비대위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이 그 증거다. 그는 청와대 출신 관피아의 취업 승인을 거의 100% 통과시켜 주듯 혁신안을 처리할 것이고, 어쩌면 그 공로로 황교안 총리의 뒤를 이어받을지 모르겠다.
“전통적인 보수 세력은 지금도 민주주의에 미숙하다.” 4년 전 ‘뉴라이트’ 이재교 공정언론시민연대 공동대표는 “노무현 정권이 스스로 무너지면서 보수가 정권을 손쉽게 되찾는 바람에 변하지 못했다”고 했다. 2012년에도 좌파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지금은 친박이 그 꼴이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