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영감을 불어넣은 것이 독일의 아우토반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자동차가 달리는 길’이라는 뜻의 아우토반은 말 그대로 독일 자동차 산업의 젖줄로 ‘라인 강의 기적’을 이끌었다. 아우토반의 약 40%는 속도무제한 구간이다. 진입로의 속도만 시속 50km로 제한하는 최소한의 규제는 아우토반을 유럽 내 최고의 도로망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올해 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구조개혁 평가보고서는 한국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네트워크 산업, 전문서비스, 소매유통 부문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규제 완화를 통한 경쟁과 혁신 촉진이 국가경쟁력의 핵심에 맞닿아 있다는 충고다.
규제프리존이 취지를 잘 살려 나가기 위해 두 가지 바람을 덧붙이고 싶다. 먼저 법안의 기본 방향인 네거티브 규제 철학이 훼손되지 않고 추진됐으면 한다. 네거티브 규제란 ‘하지 말아야 할 일’만을 제시하고 허용 가능한 최대한의 자유와 창의를 보장한다는 개념이다. 가령 드론이 날아다닐 수 있는 공간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만 제외하면 모두 된다’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둘째, 규제 완화는 해당 지역이 혁신 클러스터로 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경영학의 세계적 거장인 마이클 포터 미국 하버드대 교수에 따르면 혁신 클러스터의 성공을 위해서는 연구소, 대학, 기업 지원 기관, 금융기관 등 다양한 주체들 간의 상호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세제 혜택이나 개발사업, 건축허가 간소화 등 경제부문의 규제 완화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본래의 목표를 잃고 또 하나의 지역산업 육성 정책에 그칠지 모른다. 다행히 법안의 세부 내용에 연구소기업의 설립 요건 완화, 공동연구개발 지원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하니 실행방안이 잘 마련되기를 희망한다.
우리 경제를 둘러싼 환경 변화가 심상치 않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확대되고 있고 기술혁신은 서비스업, 제조업뿐만 아니라 농업과 같은 전통산업의 경계마저 무너뜨리는 모양새다. 사물인터넷, 융합제조업 등 복합 산업이 등장하기 무섭게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이 선점하려는 태세다.
더 이상 늦어져서는 안 된다. 국가 성장 전략으로 창조경제라는 엔진이 장착된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규제프리존이라는 새로운 고속도로에서 국가의 창조엔진이 중단 없이 질주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