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계천 광교 앞 신한은행 건물(옛 조흥은행 본점) 화단에 있는 표석의 내용이다.
보충하자면 1897년 고제홍이 고제홍서사(高濟弘書肆)를 설립했고 그의 아들 고유상이 1907년 가업을 이어받으며 이름을 회동서관으로 바꾸었다. ‘문화는 인지(人智)에서, 인지는 학문에서, 학문은 문자에서, 문자는 서책에서’라는 모토를 앞세웠던 회동서관은 근대 출판역사에서도 중요하다. 이해조의 번역서 ‘화성돈전’(워싱턴전·1908년), 이광수의 ‘무정’(1922년 3판, 1925년 6판), 한용운의 ‘님의 침묵’(1926년) 등을 출간했다.
1900년경 한남서림을 시작한 백두용이 말한다. “당시 서점이라고 하면 몇 군데도 되지 아니합니다. 중앙서림, 대동서시, 신구서림, 광학서포, 회동서관 그리고 내가 하는 한남서림 등이었으며 한남서림만이 헌책만을 팔았습니다.”(매일신보 1930년 5월 1일)
‘몇 군데도 되지 아니하게’ 출발한 우리 서점은 1996년 5378개로 정점을 기록한 후 20년간 계속 줄어 최근에는 2116개이다.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인천 옹진군, 경북 영양군 울릉군 청송군 봉화군, 전남 신안군 등에는 서점이 하나도 없으며 단 한 곳뿐인 ‘서점 멸종 예정 지역’이 43곳이다.(‘2016 한국서점편람’)
내년이면 고제홍서사(회동서관) 설립 120년을 맞는다. 이를 근대 서점 120주년으로 기념하여 2017년을 ‘서점의 해’로 삼는 것은 어떨까. 마침 1993년에 ‘책의 해’를 선포한 전례가 있다. 또 무슨 식상한 ‘∼의 해’냐 할지도 모르지만, 특별한 해를 선포하고 나서야 할 만큼 많은 서점이 백척간두에 서 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