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관 정치부장
DJ의 비토(?)를 당한 고 전 총리가 다시 유력한 대선주자 반열에 오른 건 알려진 대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이 계기가 됐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보여준 안정적 리더십에 따른 ‘고건 현상’은 2년 이상 지속됐다. 그러나 고 전 총리는 출마를 포기했다.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결론은 ‘당선 가능성’이었다. DJ가 내다본 호남 후보 한계론은 2007년 대선에서도 유효했다. 결정적 한 방은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이었다. 지금은 핵실험이 4차까지 이어져 둔감해진 부분이 있지만 당시의 충격은 엄청났다. 햇볕정책과 대북 포용정책을 견지해 온 진보정권의 연장은 불가능해 보였다. 고 전 총리는 진보정권의 틀을 넘어 합리적 보수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지평’을 모색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떨어지더라도 출마한다? 평생 대권욕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모를까, 고 전 총리로선 합리적 선택이 아니었다. 대선에서 패배하더라도 당을 다시 추스르고 다음 대선을 준비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2012년이면 만 74세가 되는 나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반 총장의 5박 6일은 대선주자로서의 당선 가능성을 정밀 탐색하는 ‘간보기’ 시간이었다고 보는 게 더 맞지 않을까. 마음껏 정치 행보를 해놓고는 출국 기자회견에서 언론의 과장 보도 운운하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제가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그런 뜻으로 이해한다.
반 총장이 고 전 총리처럼 중도 하차할지, 끝까지 갈지를 지금 시점에서 말하는 건 무의미하다. 다만 분명하게 짚을 수 있는 건 현직 대통령과의 관계다. 고 전 총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관계와 달리 반 총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는 ‘현재까지는’ 순항 중이다. 반 총장의 갑작스러운 일정 추가에 청와대는 헬기를 내줬고, 반 총장은 유엔 NGO 콘퍼런스에서 해외 순방 중인 박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반 총장이 잠재적 여권 대선주자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보수정권 재창출 기대 심리로 레임덕 방지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
현직 대통령과의 관계는 늘 양날의 칼이다. 반 총장도 대선 출마를 결심하더라도 박 대통령, 혹은 박 대통령을 추종하는 세력에 얹혀 여당 대선후보가 되는 그림을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꽉 막힌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열어 금의환향하겠다는 게 그의 1차 목표인 것 같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정용관 정치부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