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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미세분진회의록(微細粉塵會議錄)

입력 | 2016-05-31 03:00:00


일찍이 1908년 금수회의소(禽獸會議所)에 모여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을 꾸짖었던 길짐승 날짐승들이 100년도 더 지난 2016년 한반도를 굽어보매 세상사 달라진 바 없더라. 다만 옛 한성(漢城)은 어찌 이리 넓어져 오가는 사람들로 우글우글하고 공기는 탁하기 그지없어 숨쉬기가 힘들더라. ‘대신들은 이 지경이 되도록 뭘 했는고’ 싶던 차에 ‘미세먼지 대책회의’가 열린다기에 제2의 금수회의록이 나오는지 보려고 서둘러 몰려간다.

▷환경대신이 눈을 부라리며 미세먼지 주범은 경유차량과 석탄화력발전소, 고등어구이라고 일갈한다. 환경대신은 경유세를 더 걷고 전기료는 올리며 고등어는 굽지 말고 조려 먹어야 한다며 엄포를 놓는다. 이를 듣던 까마귀가 “2005년 경유 승용차 판매에 동의한 환경대신이 사세 불리해지니 적반하장도 유분수로다. 인간들이 우리더러 지난 일을 깜빡깜빡한다고 탓할 일이 아니로세” 쯧쯧 혀를 찬다.

▷산업통상자원대신은 전체 미세먼지 가운데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양이 얼마인지 정확한 통계를 알 수 없다며 고개를 외로 꼰다. 먼지 무서워 석탄발전소를 멈추면 더 비싼 액화천연가스(LNG)를 써야 해 백성들만 힘들어진다며 삿대질이라도 할 태세다. 경유차도 기술이 좋아지면 괜찮다고 감싸 안는다. 파리가 성큼 나서 “전에도 사람들은 이익 앞에서는 형제간에도 의가 상하고 일가 간에도 정이 떨어진다더니 어찌 이리 똑같소”라며 손발을 비벼댄다.

▷기획재정대신은 경유세를 더 걷으면 물가가 앙등하고 인력거와 소달구지만 늘어나 백성의 원성이 자자해진다고 얼굴을 붉힌다. 환경대신이 환경개선부담금을 더 부과하면 해결될 일 아니냐며 노골적으로 책임을 떠넘긴다. 창자가 없어 무장공자(無腸公子)로 불리는 게가 “먼지 때문에 못살겠다고 백성이 그렇게 원망해도 모른 체하다 이제 와서 백성들한테 부담 주는 일만 고안해 떠넘기니 이들이 과연 창자나 있는 사람들인가”라며 달려들듯 집게발을 치켜든다. 보다 못한 짐승들은 “내각총리대신은 대체 무얼 하고 있단 말인가”라며 뿔뿔이 흩어진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