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이라의 한국 블로그]언 발에 짧은치마? 아직도 못말려

입력 | 2016-05-31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이라 몽골 출신 다문화여성연합 대표

오후에 행사가 있어서 1시부터 나갈 준비를 한다. 옷장을 연다. 원피스에, 스커트에, 바지와 재킷…. 걸려 있는 옷은 많은데 막상 입고 나가려면 맞는 옷이 없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맞지 않는 옷이 점점 많아진다. 입고 싶은 옷과 숨기고 싶은 신체 부위가 여간해서는 서로 맞지 않는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한의사 한 분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이어트를 하면 빠져야 할 부위의 살이 아닌 다른 곳이 빠지고, 체중이 늘 때는 배부터 나온다”라고 한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젊을 때는 한두 주쯤 오이와 토마토만 먹어가면서 거의 굶어 살을 빼면 다시 맵시 나는 옷들을 입을 수 있었는데, 여자들이 소위 ‘39세’라고 대답하는 시기가 되면서부터는 다이어트로 날씬하게 되는 게 쉽지 않고, 또 예쁘게 살이 빠지지도 않는다. 운동도 하고 산책도 하고 요가도 해본다. 매일같이 체중계 눈금을 확인해 봐도 눈금은 여전히 아래쪽으로는 움직일 생각이 없다. 실망스러운 마음에 운동도 점점 띄엄띄엄 하게 되고, 산책을 가야 할 시간에는 책상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본다.

급기야 남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건다.

“운동을 조금씩만 하고, 요가는 다시 하고, 군것질은 그만하자.”

“당신이 조금 더 살이 쪄도, 아니 아주 많이 쪄서 M타이어 광고에 나오는 ‘하얀 통통맨’이 되어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까지라도 똑같을 거야. 그런데 당신이 밖에 나갈 때 예쁜 옷 입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신만만하게 외출할 수 있으면 좋겠어.”

반박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지나치게 친절한 권유다. 회사에서는 복잡한 일을 하는 것 같은데, 집에서는 굉장히 단순한 사람이다.

날씬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여인네들의 열정은 한국이나 몽골이나 다 마찬가지다. 몽골에선 한국에서 봄꽃이 한창 피는 5월에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기도 하고 눈이 몇 차례씩 내리기도 한다. 춥고 바람이 불어도 일단 영하 30도를 오르락내리락하던 겨울이 조금이라도 고개를 숙이는 4, 5월이 되면 겨우내 억눌러 왔던 ‘스타일’이 중요해진다. 얇은 옷으로 추워서 죽더라도, 멋지게 입고 나가서 예쁜 ‘아가씨’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추위는 그 다음 생각할 문제다.

어린 시절 같이 살던 할머니께서 “미녀는 (추운 날씨에도 얇고 짧은 옷을 입고 다니고 싶어서) 봄가을에 자주 얼어 죽는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러면서 “옷을 따뜻하게 입고 다녀라”라고 자주 충고하셨다. 그 말을 수천 번 듣고 자랐지만, 추운 봄가을 날씨에도 아름다움을 위해 밖에서 하루 종일 덜덜 떨며 동상이 걸리더라도 짧은 치마에 얇은 옷으로 치장하고 다니곤 했다.

고등학교 시절, 9월에 새 학년이 시작되면 모든 학생은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오랜만에 만나는 날인지라 교복을 특별히 더 신경 써서 예쁘게 입고 간다. 9월이면 추위가 시작돼 아침에 서리가 하얗게 내릴 때라 얇은 스타킹에 원피스 교복 하나만 입고 나가기는 꽤 추운 날씨다. 그래도 예쁘게 보이려면 그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겨울에 가장 고생한 것이 나의 귀다. 지금도 이해가 안 가지만, 옛날 몽골에서는 보온 귀마개라는 것이 없었다. 만들기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닐 테고, 지금은 있어도 옛날에는 없었던 물건이다. 털모자라도 쓰면 귀가 시리지는 않았을 텐데, 여학생들은 당시 앞머리를 위로 올려 세우는 헤어스타일이 유행이어서 머리가 눌릴까 봐 모자를 안 쓰고 손으로 귀를 감싸고 종종걸음으로 다녀야 했다.

겨울에도 두껍고 따뜻한 털신보다는 얇은 가죽신을 신고 나간다. 학교가 끝나고 버스를 기다리는 10분 남짓한 시간에 발가락이 얼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아프다가 나중에는 점점 느낌이 없어지고 걸음걸이마저 이상해질 정도다. 집에 들어가면 발이 얼어 잔뜩 부어 있기 일쑤다.

할머니는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야단을 치시곤 했지만 지금은 그리운 기억들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오래된 옛날이야기를 한다고 신기하게 쳐다볼 만한 얘기다. 그렇지만 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 온 아름다움을 향한 동경을 확인할 수 있는 기억이기도 하다.

이라 몽골 출신 다문화여성연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