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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 교수의 과학 에세이]모든 길은 빅뱅으로 통한다

입력 | 2016-05-31 03:00:00

― 에너지 보존법칙의 철학적 의미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당신이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는 까닭은 늘 새로운 강물이 당신에게 흘러들기 때문이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대립되는 것들 사이의 충돌과 조화에 따른 변화를 중시했다. “선과 악은 하나다”라든가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은 하나다”가 그 예다. 반면, 파르메니데스는 변하는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참된 존재는 ‘일자(the One)’로서, 변하지 않고 무한하며 분할할 수 없다. 일자는 헤라클레이토스가 생각한 대립물의 통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둡다’는 ‘밝다’의 대립물이 아니라 단지 밝지 않을 뿐이다.

또한 파르메니데스는 ‘무(無)’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알 수도, 말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이상한 논리지만, 이로부터 ‘생성과 소멸은 없다’는 중요한 결론이 나온다. 생성되었다는 것은 그 이전에 무였다는 말인데, 무란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결국 ‘실체의 영원불멸성’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런 영원불멸하는 실체라는 개념은 현대물리학의 근본을 이룬다. 일명 보존법칙이다. ‘질량 보존의 법칙’은 화학반응의 전후에 물질의 질량은 보존된다고 말해준다. 질량을 갖는 물질은 창조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물질에 영원불멸하는 실체의 지위를 준다. 어찌 보면 유물론을 과학적으로 지지해준 것이다. 에너지 보존법칙의 발견자 가운데 한 사람인 율리우스 로베르트 폰 마이어는 유물론을 싫어했다. 유물론은 물질과 분리된 정신이나 영혼의 존재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래서 마이어는 정신이나 마음 같은 관념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이고 싶었고, 결국 찾아낸 것이 바로 ‘에너지’였다. 에너지가 보존된다는 것은 그것이 영원불멸의 실체라는 의미다. 당시 에너지는 관념적인 개념이었으므로, 이는 관념론을 지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우주의 모습은 파르메니데스의 생각에 가깝다. 세상은 물질과 그것의 운동으로 이해된다. 물질의 근원인 원자는 영원불멸한다. 당신이 죽으면 원자, 분자로 쪼개어져서 일부는 나무에 흡수되어 잎이 되고, 일부는 세균의 먹이가 되어 세균의 일부가 된다. 일부는 공기 중으로 흩어져 태평양 어딘가에 떨어질 수도 있고, 누군가의 연필심이 될 수도 있다. 안타까워할 필요 없다. 지금 당신의 몸을 이루는 원자들도 모두 ‘다른 것’에서 온 것이니까. 적어도 원자 수준에서 당신은 영원불멸할 수 있다. 비록 형태는 바뀌겠지만.

운동의 근원인 에너지는 보존된다. 형태가 다른 것으로 바뀔 뿐 생성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당신이 물체를 떨어뜨리면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바뀐다. 위치에너지는 물체를 들어 올릴 때 당신 몸의 에너지가 변화된 것이다. 몸의 에너지는 음식에서 온 것이고, 음식은 식물에서 온 것이다. 이렇게 가다 보면 결국 빅뱅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변화 없는 세상에서 시간은 어떻게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걸까.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는 것은 변화가 있다는 뜻 아닌가.

‘엔트로피’라는 물리량은 증가하기만 한다. 엔트로피는 무질서의 척도이자 무지의 척도이며 또한 정보의 척도다. 엔트로피야말로 가장 많이 오용(誤用)되는 물리 개념 가운데 하나일 거다. 제러미 리프킨은 ‘엔트로피’에서 엔트로피를 완전히 잘못 설명하고 있다. 진중권도 ‘성과 충돌의 디지털 미학’ 강의에서 엔트로피를 무슨 상태인 것처럼 사용한다. 엔트로피는 확률로 정의된 물리량이다. 엔트로피가 크다는 것은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크다는 의미밖에 없다. 원자나 에너지는 여전히 영원불멸하다. 엔트로피는 에너지와 원자들이 배치되는 방법의 수가 많은지 적은지 하는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엔트로피의 관점에서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은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것보다 단지 확률이 더 커서 그렇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확률이 점점 작아져서, 우주의 탄생시점에 이르면 확률적으로 가장 일어나기 힘든 상태에 도달한다. 이것이 바로 빅뱅이다. 우주 전체가 한 점에 모여 있는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상태 말이다. 모든 길은 빅뱅으로 통한다.

과학은 철학이다. 과학은 수천 년 동안 철학자들이 고민해 온 질문의 답을 찾으려 노력한다. 세상은 변화하는가, 변화하지 않는가? 이제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를 만나 이야기해주고 싶다.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