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이유는 다양하게 설명돼 왔다. 투수들의 기량이 향상된 반면, 타자들은 퇴보했다고 믿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그런데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반대로 타자들의 ‘수준 향상’이 이유라고 주장했다.
초창기 야구는 평균 타율(0.260 안팎)을 기준으로 타자들의 기록이 넓게 퍼져 있었다. 선수들의 기량 격차(편차)가 상당했던 것이다. 상위 5%는 4할을 기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량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대부분의 선수가 평균 타율을 중심으로 모였고, 최상위 타율은 0.350 정도로 정리됐다. 4할 타자는 그렇게 사라졌다.
그런데 통계학적 멸종 선언과 달리 4할 타자가 부활하려고 한다. 롯데 김문호(사진)가 예사롭지 않다. 30일 기준으로 타율이 0.415이다. 50경기 가까이 치른 상황에서 초반 기현상이라고 마냥 치부하기는 어렵다. 입단 10년 차인 김문호는 고교 시절 ‘천재 타자’로 불렸다. 혹시나 그의 천재성이 살아나 멸종된 4할 타자를 부활시키려는 것일까.
김문호는 풀타임 경험이 거의 없다. 게다가 리그 경기 수도 144경기로 늘었다. 이전보다는 훨씬 고된 레이스를 감당해야 한다. 견제도 거세질 것이다. 변수가 많다.
하지만 4할 타자의 부활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비빌 언덕이 있다. 굴드가 제시했던 멸종의 조건이 달라졌다. 바로 평균 타율이다. 굴드는 리그의 평균 타율이 0.260 정도로 고정돼 왔다고 주장했다. 미국도 그랬고, 실제 국내 프로야구도 그랬다. 0.260을 벗어나면 리그는 인위적인 조치(스트라이크존 변경 등)로 그 수치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온난화(타고투저·打高投低)라는 변수가 생겼다. 올해 프로야구의 평균 타율이 0.286까지 상승했다. 편차가 비슷할 경우 평균값이 커지면 최고 값도 커진다. 투타 간 극심한 힘의 불균형이 평균 타율을 높이면서, 리그 최고 값인 김문호의 타율도 4할대까지 올랐다고 볼 수 있다. 김문호의 4할 레이스는 개인적인 탁월함과 함께 리그 생태계의 불안정성을 동시에 조명하고 있다.
윤승옥 기자 tou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