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를 거부하는 ‘실버’들
○ 대중문화, 실버 콘텐츠를 탐하다
시니어벤져스는 노인의 품격을 떨어뜨리려는 외계인? 조사에 착수해 보니 이뿐만이 아니었다. ‘할미넴’(할머니+미국 래퍼 에미넴을 합친 말) 들어봤나? 한 종편의 예능프로 ‘힙합의 민족’에서는 평균 나이 65세 여성들이 랩을 배운다.
문화 소비 주체인 젊은이의 관심 속에 ‘늙음’은 없지 않은가? 당연히 노년층을 내세운 영화, 드라마는 드물었다. 영화 ‘마파도’,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 순재’, 이 캐릭터를 확장한 예능 ‘꽃보다 할배’ 등 속칭 코믹한 ‘실버 캐릭터’가 호응을 얻었을 뿐…. 젊은이들은 “요즘 실버 캐릭터는 ‘실버’를 벗었다”고 해석했다.
“‘디어 마이 프렌즈’의 조희자(김혜자)는 ‘감성소녀’, 희자의 동창 문정아(나문희)는 세계여행을, 독신 할머니 오충남(윤여정)은 로맨스를 꿈꾸죠. 나이만 빼면 그냥 우리 같아요.”(대학생 최유정 씨·24)
최신 문화트렌드에서 따온 시니어벤져스란 말 자체에 답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보면 어르신들 이야기지만 고현정의 시선으로 그려집니다. ‘계춘할망’도 김고은이라는 청춘을 통해 할머니를 이야기합니다. 어르신이 주인공이라도 젊은 세대를 겨냥하죠. 젊은이들은 막연하게 생각했던 어르신 이미지가 깨질 때 재미를 느끼게 되고요.”(정덕현 문화평론가)
○ 나는 ‘노인’이 아니라 ‘나’
대중문화에서 노년층이 중심으로 이동 중임을 확인한 두 요원. 하지만 실제의 노년층은 이런 현상에 거부감을 느낀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노인들이 실버 캐릭터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면 착각이에요. 우리도 ‘쌩쌩한’ 젊은 사람들이 나와 활기와 역동감을 보여주는 게 좋아요.”(주부 홍순진 씨·69) 한 70대 남성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싫다”고 했다. “내 손자한테나 할아버지죠, 타인이 왜 날 그렇게 부릅니까? 그냥 ○○○ 씨라고….”(서울 합정동 김모 씨·70)
혼란스러운 우리는 삼성생명 은퇴연구소를 찾아 노년 심리를 분석했다. ‘몇 살 이상을 노인이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노인복지법상 규정한 ‘65세’라고 답한 이는 7.7%에 불과했다. 75세는 넘어야 노인이라는 응답이 20.2%나 됐다. 박지숭 연구원이 귀띔했다.
“제 시아버지가 84세인데, 그분도 노인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잘 안 보세요. 기업도 이제 마케팅을 할 때 시니어란 단어를 자제하고요. 70대 할아버지가 청바지에 귀고리 하잖아요. 나이를 배제하고 그냥, 개인을 보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거요.”
“우리 모두는 시한부다. 남은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젊은 순간이다.” 하지만 성찰도 잠시. 두 요원은 요상한 안경을 쓴 젊은이를 만나게 되는데….(다음 회에 계속)
김윤종 zozo@donga.com·임희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