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사례 2. 대기업 팀장인 B 씨는 올해 말 자발적 퇴직을 계획하고 있다. 재무 분야에서 일해 온 그는 자기만의 사업을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그는 적어도 앞으로 5년 동안은 대기업에서 아무 문제없이 일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먼저 떠나는 쪽을 생각했다.
이 두 사람은 과연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
직장을 떠나고 옮긴다면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이직과 관련해 들었던 가장 중요한 말은 “저점이 아닌 고점에서 옮겨라”라는, 어느 헤드헌터의 조언이었다. 우리는 보통 회사에서 일이 안 풀릴 때, 누군가와 사이가 안 좋아졌을 때 이직을 고민하게 된다. 이는 마치 주식을 가격이 낮을 때 파는 것과 유사하다. 물론 저점에서 떠나는 것을 고려해야 할 때도 있다. 단순히 직장을 옮기는 것이 아닌 그동안 몸담았던 직업에 대한 회의가 들어 업(業) 자체를 변경하려고 할 때다.
고점에서 옮기라는 조언에 대해 일도 신나게 잘 풀리고 승승장구할 때 옮기란 말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고점에서 옮기라는 말은 다시 풀어보면 무엇인가 익숙해질 때 옮기라는 말이다. 익숙하다는 말은 더이상 배움이나 자극이 없다는 말이다. 커리어를 개발하면서 익숙함은 경계의 대상이다. 성장이 멈추었다는 뜻일 수 있기 때문이다.
떠나기로 마음먹었다면 잘 헤어져야 한다. 보통 직장을 옮길 때 우리는 새로 가게 될 직장에 더 비중을 두고, 떠나는 직장에는 소홀히 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소셜미디어로 인해 더 연결된 세상에서 이것처럼 자신을 망치는 일도 없다. 저점이 아닌 고점에서 떠나라는 조언처럼 ‘박수 받을 때’ 떠나는 것이 중요하지만 ‘박수 받으며’ 잘 떠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끝이 안 좋으면 앞으로 또 문제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A 팀장의 경우에는 대기업에서 인정도 받았고 다양한 경험도 했지만, 자신의 전문성이자 열정이 있는 콘텐츠 분야의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중소기업 임원으로 옮겼다. 나는 그가 ‘신의 한 수’를 두었다고 생각한다. 고점에서 옮겼으며, 자신의 전문성을 더 발휘할 수 있는 곳으로 갔고, 주요 임원으로서 사업 전체를 바라보며 기획과 조정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갔기 때문이다. 기업은 더 작은 곳으로 옮겼지만 자신의 업무 분야에서는 더 큰 곳을 선택했다. 장담하건대, 그는 이번 이직으로 대기업에 있을 때보다 적어도 은퇴 시점을 최소 5∼10년은 더 늘려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에서 그만한 경험을 가진 사람을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A와 B 팀장은 모두 박수 받을 때, 박수 받으며 떠났거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주변 상황 변화에 어쩔 수 없는 수동적인 리액션(반응)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 상황을 스스로 개척해 주도적인 액션을 취하며 살아간다는 점이다. 회사를 떠나는 일도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