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개는 문을 나와 앞장서 가면서 사람이 따라오지 못하면 돌아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수십 리를 가자 큰 마을이 나타났다. 개는 곧바로 마을 뒤편 어떤 작은 집으로 들어갔는데 한 부인이 배가 갈라진 채 죽어 있었다. 군교가 말하였다. “개야, 네 주인을 누가 죽였는지 아느냐?” 개는 마을의 집들을 두루 들어가 사람 얼굴을 살피더니 다시 다른 마을로 달려갔다. 거기서 한 총각을 보더니 뛰어 들어가 옷을 물고 짖어댔다. 군교는 총각을 묶어 관아로 끌고 왔는데 개가 따라 들어와 성난 눈으로 노려보며 짖었다.
수령이 총각을 문초하자 총각은 감히 숨기지 못하고 사실대로 다 털어놓았다. 그 부인은 양반가 부인으로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는데 친척도 없었다. 총각이 부인을 차지하고자 칼을 들고 들어가 위협하였는데 부인이 죽기로 항거하자 총각이 남이 알까 두려워 부인을 찌르고 그 흔적을 없앤 것이었다. 수령은 즉시 그 총각을 사형시키도록 하고 수의와 관을 갖추어 부인을 장사 지냈다. 장사가 끝나자 개가 따라서 죽어 무덤 곁에 묻어 주었다.
김약련(金若鍊·1730∼1802) 선생의 ‘의구전(義狗傳)’입니다. ‘의로운 개’라지만 오히려 사람보다도 낫습니다. 강아지 공장, 고양이 공장의 실태를 접하면서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픕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세상이 되어 가는지…. 선생의 마무리입니다.
아아, 기이하구나. 어느 누가 이런 미물이 이렇게까지 할 줄 알았으랴? 이는 반드시 주인의 평소 행실이 능히 짐승까지 감동시켰기 때문에 그러했을 것이다(是必由主人平日之行有能感於物而然也).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