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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논설위원
김일성-박정희 연쇄회담
‘반기문, 꽃가마는 없다’는 제목의 3월 11일자 본 칼럼 내용이다. 5월 방한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전 인생을 건 싸움’에 한 발을 올려놓았다. 그가 이번에 남긴 말 가운데 유독 내 눈길을 끈 것은 북한 관련 언급이었다. “남북 간 대화 채널을 유지해온 것은 제가 유일한 만큼 기회가 되면 (방북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 얼핏 정부 당국이 들으면 기분 나쁠 정도로 자신을 ‘유일한 남북 대화 채널’로 차별화했다. 방북에 집념을 드러내는 그를 보면서 전임자 한 사람이 떠올랐다.
2007년 타계한 발트하임은 지하의 그가 알면(?) 깜짝 놀랄 정도로 갑자기 한국인의 관심을 받는 인물이 됐다. 유엔 총장을 지낸 뒤 대통령에 당선된 유일한 반 총장(8대) 전임이기 때문이다. 3선을 노렸던 발트하임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자신의 주요 업적으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그해 박 대통령 서거로 없던 일이 됐고, 결국 3선에 실패했다. 반 총장이 이런 사실(史實)을 모를 리 없다. 총장으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그의 표현대로 ‘한국 시민으로서 할 일’의 발판을 다지는 데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과 회담하는 것만큼 딱 떨어지는 그림도 없다.
발트하임은 1938∼45년 나치 장교로 근무했다. 이런 전력이 총장 시절 드러났다면 직무 성격상 수행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전력이 드러난 것은 그가 오스트리아 대선 후보로 뛰던 1985년. 그만큼 선진국에서도 국제정치보다 국내정치의 검증이 무섭다. 그럼에도 이듬해 54%의 득표율로 당선된다. 독일보다는 전후 청산이 덜 엄격했던 사회 분위기에 ‘나치 치하에서 누구라도 별수 없었다’는 ‘시대의 공범자 의식’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발트하임 사례에서 보듯 반 총장에 대한 검증은 이미 시작됐다. 최근 외교문서 공개로 1980년 미국 유학 중이던 그가 망명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향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난 게 그 신호탄이다. 반 총장은 방한 중 “나를 흠집 내기 위한 보도”라며 평소의 그답지 않게 열을 올렸다. 국록을 먹는 고위 공무원이 당시로선 반정부인사 동향을 보고한 것이 크게 누가 될 일은 아니다.
검증 통과보다 비전이 중요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